[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년 5월 31일, 마흔여덟 번째 글
2시간 뒤면 5월 31일도 날짜상으로 끝납니다. 12시가 땡, 하면 6월 1일인데 어째 기분이 이상합니다. 6월 한 달의 시작을 앞두고, 5월을 영영 떠나보내야 하는 이 순간. 시작과 끝, 그 둘 사이의 모호한 경계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분명 5월은 거의 끝났고 곧 있으면 완전히 끝날 예정입니다만, 그렇다고 그 순간 우리 인생에서 떨어져 나가, 아예 없었던 사실이 되지는 않습니다. 다가올 6월은 분명 무언가 시작하지만 5월의 연속이기도 하고 동시에 끝입니다. 으레 사람들이 시작과 끝의 순간을 뚝 떼어놓을 수 있다는 듯이 취급하지만 막상 두고 보면 그리 쉽게 분별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무엇인가 끝나면 무엇인가 시작하죠. 이제 봄은 곧 자취를 감추고, 무더운 여름이 맹위를 떨칠겁니다. 아, 여름은 벌써 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군요. 대체 봄은 언제 끝난 것일까요. 한참 더위에 고통받다보면 슬슬 서늘해진다가 싶다가 어느새 온몸이 움츠러들만큼 엄혹한 추위를 느끼고 겨울이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다는 사실을 깨달을 겁니다. 어디 계절만 그런가요. 인간관계나 일도 그렇습니다. 무엇이 시작하고 끝났다는 개념은 인간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어느 지점을 설정했을 뿐이지 그리 확고한 개념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시작해야하는 순간이 분명해야할 이유도 없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봤더니 무언가를 아주 자연럽게 여기고 있거나, 나도 모르게 어떤 과정의 한복판에 들어와있는 것 같은 느낌, 느껴본 적 있지 않으신가요? 가령 이런 거죠. 아주 친한 친구와 언제부터 친구였는지 굳이 따지시나요? 물론 연인 관계에서는 기념일을 챙기기도 하니까 날짜를 따질 필요가 있겠습니다만, 그게 본질은 아니죠. 중요한 건 그 사람과 나의 관계 그 자체니까요. 언제 시작했고 언제 끝날 것이냐 혹은 끝났는가는 딱히 중요해보이진 않습니다.
물론 아무리 이렇게 떠들어도, 시작과 끝을 분명히 실감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연말연초나 혹은 소중했던 사람과 더이상 관계를 이어나가지 못할 때, 학기초나 학기말. 혹은 매주 월요일과 일요일. 심지어는 하루를 시작하는 순간과 침대에 누워 마무리하는 순간들. 하나하나 열거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아, 여기도 또 하나 끝이 있군요. 그러나 시작과 끝을 그렇게 구분하려드는데, 모든 게 하나의 과정이며, 또한 언제든 시작되고 끝날 수 있다는 사실은 왕왕 잊혀집니다.
완전한 끝이 없다면 우리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매 순간 새롭게 시작할 수도 있겠죠. 무언가 시작하기에는 혹은 끝내기에는 너무 늦었다거나, 너무 이르다거나. 그러한 판단을 내리는 기준이 각자에게 있고, 나름의 이유가 있지요. 그러나 시작하려면 지금도 할 수 있고, 끝내려면 지금도 끝낼 수 있습니다. 시작과 끝이라는 관념에 얽매일 필요는 없지요. 어쨌거나 6월이 시작됩니다. 6월은 5월보다 좀 더 잘 살아보고 싶네요. 시작을 앞두고 이 두근거리는 마음 그대로 살아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