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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Jun 11. 2019

괜히 웃어보기.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년 6월 11일, 54번째 글


메라비언의 법칙따르면, 의사소통에서 언어의 내용보다는 비언어적인 요소가 가지는 영향력이 크다고 합니다. 굳이 이론까지 가져올 필요도 없습니다. 표정이나 제스처 그리고 목소리 대화에 뒤따르는 사항이 지닌 중요성은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있습니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게 하나 있군요. 가령 저 같은 경우, 나름대로 상대에게 성심껏 호응을 한다고 했는데도 영혼이 하나도 없다고 핀잔을 들었던 적이 빈번합니다. 뭐, 거울을 보지 않아도 그때 얼굴이 어땠을지는 상상이 갑니다. 얼굴에 주름 하나 잡히지 않은 심드렁한 얼굴로, 억양 하나 바뀌고 "와, 진짜요." 같은 말을 내뱉었겠죠. 그걸 듣고 있었을 상대방은, 얘가 얘기를 듣기는 건지 의구심이 들었을 겁니다. 무신경함의 극치였겠지요.


오늘은 이야기해볼 주제는 앞서 언급된 비언어적 표현들 중에서도 '표정'입니다. 여러분은 평소에 얼마나 자주 웃으시는 편이신가요? 저는 거의 웃지 않습니다. 어지간해서는 웃을 일 자체가 없으니. 자연히 무표정으로 있게 되더군요. 어떨 때는 감정을 드러내는 자체가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다들 무표정한데 혼자 실실 웃고 있으면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것 같아서 괜히 표정을 굳힌 채로 다니죠. 그리고 표정에 변화가 있어도 금방 무표정으로 돌아가고요. 튀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라도 더더욱. 비단 웃음뿐만이 아니라 부정적인 종류의 감정들까지, 여하간 그 순간의 '감정'을 표정에 드러내지 않는 마치 미덕이라도 되는 여기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감정 하나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어떻게 미덕이겠습니까.


일단 웃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싶어 2주 전부터 웃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굳이 웃는 것부터 선택한 나름의 이유도 있습니다. 가만히 무표정을 하고 있을 뿐인데, 그럴 때마다 표정이 너무 차갑다는 말을 얼마나 자주 들었는지. 앞으로는 그런 종류의 오해에서 벗어나 보자는 게 첫 번째 이유였습니다. 두 번째는 제 스스로가 견지하고 있는 이상적인 인간상과 관련이 있습니다. 저는 미소가 자연스러운 사람이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하는데, 정작 제 자신은 웃을 때 표정이 엄청나게 어색한 편입니다. 그러니 매력적인 건 둘째 치더라도, 일단 자연스럽게 웃어보자 싶었지요. 아직은 부자연스럽지만, 좀 더 연습하면 나아지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매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고요.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한 건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겁니다. 그보다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 때, 그 감정을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나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인간이 되고 싶다.'는 쪽에 가깝습니다. 웃고, 울고, 화내고, 당황하고. 살아있는 순간에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을 좀 더 자연스레 표현해보고 싶습니다. 자연스럽게 하고 싶다면서 '연습'을 하겠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처럼 들릴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은 일도 한 번 두 번 반복하다보면 자연스러워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웃는 것, 표정을 드러내 보이는 일도 점점 더 익숙해지겠죠.


글을 쓰는 내내 뭔가 만족스럽지 않아 올려야할지 말아야할지 내내 고민했습니다. 오늘은 쓰고 싶었던 말이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이것 역시 하나의 연습입니다. 물론 글에는 표정이 드러나지 않지만, 그 답답한 느낌을 담아보려 했습니다. 어쩌면 올려놓고도 차라리 올리지 말 걸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뭐든지 하고 나서 후회하는 편이 나을 테고. 다음 번에는 오늘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겠지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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