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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후추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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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Sun Aug 14. 2021

너를 위해 하는 인사

후추일기 스물세 번째


후추가 온 뒤로 우리집이 가족이 여럿(최소 네 명 이상) 모여 사는 집이거나 손님이 자주 찾아오는 집이면 어땠을까, 생각하게 된다. 허! 이건 좀 웃긴 얘기다. 어떻게든 '내가 선택한 가족'이 아닌 모든 타인에게 침범 당하지 않는 나만의 공간을 꿈꾸고 만들어온 내게 지금의 거주환경은 과장하면 무엇과도 바꾸기 어려운 중요한 삶의 요소 중 하나니까. 그런데 후추 때문에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는 얘기다. 민망해서 웃음이 난다. 하지만 때로 우리집은 너무 조용한 것 같다. 후추가 시간을 두고, 눈을 맞추며, 서로의 냄새를 충분히 맡을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사람이 나와 남편뿐이라 후추에게 조금 미안할 때가 있다. 사람을 더 많이 경험할 수 있다면. 사람이라는 존재가 재미있고, 사람을 만나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을 후추에게 알려주고 싶다. 후추가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사람의 손길을 너무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얘는 조금만 알려주면, 몇 번만 경험하면 금방 배울 텐데 그럴 기회가 많지 않으니 그게 번번이 안타깝다.


얼마 전 산책길에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가 후추를 보더니 대뜸 "야! 똥개야!!"라면서 말을 걸었다. 후추가 기겁했음은 물론이다. 안 그래도 후추는 막대기-지팡이, 우산, (청소하는 분들이 사용하는)긴 빗자루 등-를 소지한 사람들을 엄청나게 무서워한다. 어째서 그 순간 나는 화도 못 내고 바보 같이 웃으면서 "얘가 겁이 많아요, 하하."라고밖에 못했을까. 두고두고 화가 난다. 그러든지 말든지 그 할아버지는 "그래도 똥개가 안 짖는다? 착한 개네. 가라, 똥개야!"라고, 조금도 칭찬 같지 않은 소리를 하더니 우리를 지나갔다. 후우. 비극적인 건 거기에 악의가 없다는 점이다. 딴에는 후추를 귀여워 하는 마음에 건넨 말이다. 나는 어떤 인사는 아주 아주 폭력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사정이 이러해서 집에 정수기 필터 교체를 위해 관리사 분이 방문한다고 했을 때 내심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전에, 아파트에서 진행하는 일괄 소독을 위해 낯선 사람이 집에 들어오자 후추는 멍멍 짖었더랬다. 강아지들은 짖는 법이라지만 후추는 일단 집 밖에서는 단 한 번도 짖은 적이 없고(왕 겁쟁이 후추), 집 안에서는 그나마 밖에서 갑작스러운 소리가 들릴 때만 짧게 짖는 정도였기 때문에 나는 당황했었다. 소독을 위해 방문한 분도 위협을 느꼈을 터라 정수기 관리사 분이 올 때는 아예 후추를 안고 있어야 하나 고민이 됐다.(하지만 일단 후추는 안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외부인이 방문할 때마다 후추를 안고 있어야 한다는 것도 좀 내키지 않는데, 뭐 더 좋은 교육 방법이 없을까...)

그런 저런 고민은 아무리 해도 정리가 안 됐고, 정수기 관리사 분은 약속한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초인종이 울렸다. 소리에 놀란 후추를 향해 나는 별일 없다는 듯 하품을 시전했다(하품은 언제나 효과가 있다!). 그런 다음 현관문을 아주 살짝만 열어서 관리사 분께 "저희 집에 강아지가 있는데요. 교육을 시키려고요. 죄송하지만 천-천히 들어와주시겠어요? 부탁드려요."라고 말했다. 관리사 분은 감사하게도 나의 부탁을 이해하셨고, 천천히 집 안으로 들어왔다. 바로 여기서부터 신나는 일이 벌어졌다. 그분의 차분한 태도, 천천한 동작 덕분인지 후추가 전혀 짖지 않았던 것이다. 꼬리의 모양새로 보아 낯선 사람의 등장이 조금 무섭긴 하지만 그래도 궁금함이 더 큰 것 같았다. 후추는 내 뒤에 서서 그분을 힐끗힐끗 엿보더니 조금 후에는 살며시 나를 앞질러 그분에게 다가갔다 후다닥 돌아오기도 했다. 그분은 변함없이 평정을 유지하면서 필요한 작업을 해나갔고, 점차 후추도 편안해했다.

나는 이 장면이 엄청나게 기뻐서 "어머, 너 웬일이야?" 하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저번에 얘가 다른 분 오셨을 때 짖어서 걱정했거든요. 얘가 겁이 많아서요. 근데 오늘은 완전 괜찮네요. 이해해주셔서 진짜 감사드려요."

"강아지가 집에 온 지 얼마 안 됐나봐요?"

"네, 이제 몇 개월이 지났는데요. 왜 이렇게 겁이 많을까요."

"그래도 사회성이 없는 개는 아니네요. 겁은 좀 있지만 호기심이 많아서. 우리집 개는요..."


역시! 나는 그분도 반려인이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속으로)무릎을 탁 쳤다. 서비스업에 종사하시는 분에게 불필요한 추가 감정노동을 요청하는 것 같아 내내 마음에 걸렸던 참이다. 우리는 한동안 강아지와 함께 사는 반려인의 기쁨과 슬픔을 나눴다. 그러는 중에도 그분은 후추가 다가와서 바지 냄새를 킁킁 맡아도 내버려둔 채 큰 움직임 없이 하던 일을 계속 했고, 후추는 그 모습에 안심한듯 그분 곁을 조심조심 맴돌다 자기가 좋아하는 자리로 돌아가 앉기를 반복했다. 그분이 산뜻하게 "안녕-!" 하면서 떠나신 것은 물론이다.


나는 이런 것이 진짜 인사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 나는 어른들 만나는 게 싫었다. 누군가는 반갑다는 인사를 내 엉덩이를 발로 차며 했다. 어떤 사람은 많이 컸다며 볼 때마다 여기저기를 만졌다. 어른들은 진짜 궁금한 것이 아닌 게 뻔히 보이는데 괜한 질문을 던졌다. "학교는 재미있냐?", "친구들은 많이 사귀었냐?"고 묻고는 대답은 듣지도 않았다. 그냥 별말 없이 용돈이나 주는 어른이 제일 좋았던 게 나뿐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어른의 위치가 되었을 때, 나는 내가 싫어하던 어른은 되고 싶지 않다고 아주 많이 생각했다. 제대로 된 인사를 건네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어린이와 진짜 대화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어린이의 말을 기억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었다.


그저 입으로 "안녕"이라고 뱉는 게 인사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인사는 생각보다 훨씬 더 상대를 향한 것이어야 한다. 상대의 상황을 헤아리고, 그에 나의 눈높이와 목소리를 맞추며 건네는 것. 그것이 진짜 인사. 그게 어렵다면 상대와 나 사이에 안전하게 거리를 유지하면서 호감을 건네는 정도로 충분할 것이다. 아무도 대뜸 상대의 집에 쳐들어와 "잘 있었냐?"며 바지를 벗어던지지 않듯이, 인사는 그렇게 상대를 안심시키면서 살며시 건네는 것. 그런 양식 있는 사람들 틈에 지내고 싶다.


이제 나는 강아지를 마주쳤을 때도 '귀엽다'는 눈빛을 건네주고 웃으며 가만히 곁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깊은 유대감을 느낀다. "만져봐도 돼요?"라고 물으며 다가오는 어린이/청소년들에게 기쁨을 느낀다. 아직은 그들에게 "네, 예뻐해주시면 강아지가 좋아할 거예요!"라는 답 대신 "아니요, 강아지가 다가오면 겁 내거든요. 거기 서서 인사해줄래요?"라고 답하지만. 언젠가는 후추에게 인간의 다양한 친절이 쌓여서 "물론이죠!"라는 답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나는 반드시 올 그 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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