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베넷, 『이 팬티는 어디에서 왔을까』
Made in China.
어디에나 찍혀 있는 글씨입니다. 저 예쁜 연필꽂이도, 무릎 담요도, 지금 사용하고 있는 마우스도, 매일 입고 자는 수면바지도 모두 Made in China입니다. 설마, 해서 이것도 싶어 뒤집어 보면 역시. 심지어 이 물건들은 품질이 좋고 디자인도 예쁩니다. 쓸모는 물론이지요. 가격마저 저렴합니다! 어떻게?
뉴질랜드에 사는 조 베넷은 저보다 훨씬 예민했던 것 같습니다. 대형매장에서 “투명 비닐 주머니에 돌돌 말려서 들어 있는 다섯 장들이 묶음” 팬티를 8.59뉴질랜드달러(약 7,100원)에 사면서 놀랍다고 생각한 것을 보면 말입니다. 그의 책 『이 팬티는 어디에서 왔을까』는 이런 사소한 호기심에서 시작합니다.
이 행동력 넘치는 저자는 자신의 아이디어에 반해 팬티의 고향 찾기를 당장 실행에 옮깁니다. 자신이 구입한 팬티를 수입한 업체를 찾아가고, 팬티를 제조한 공장을 찾아 중국으로 날아갑니다. 끝끝내 목화밭까지 찾아갔으니 자신의 목표는 달성한 셈입니다. 재치 있는 사람의 집요함은 걸작을 남기기도 하는 모양인지 저자는 책을 단순한 여행기에서 끝내지 않고 중국의 역사와 문화, 변화의 가운데에 서 있는 사람들의 삶을 통찰해내기까지 합니다.
그 중에서도 압도적인 장면은 우여곡절 끝에 중국의 한 화물 집하소에 들어간 저자가 목격한 물건들의 목록입니다. 로션, 종이컵, 도마, 볼펜, 치약, 칫솔, 샌드페이퍼, 공기압축기... 목록은 끝도 없이 이어집니다. 이것들은 도대체 어디로 간단 말인가요? 목록을 활자로 읽기만 했을 뿐인 저도 이토록 충격인데 그것을 직접 본 저자는 어땠을지,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제품의 목록만큼이나 행선지도 다양해서 거기에는 브라질과 터키, 나이지리아, 미국, 벨기에와 영국은 물론, 들어본 적 없는 나라까지 적혀 있었습니다. 좀 으스스해졌습니다.
이 공장에서는 매달 남자 속옷 72만 장, 여자 속옷 120만 장, 란제리 240만 장을 생산한다. 매달 총 400만 장이 넘는다. 그중 대부분은 유럽으로 수출한다. 내수 판매는 없다. 브래지어 한 장도 중국에서는 팔리지 않는다.(123쪽)
그렇지만 단지 온갖 물품이 중국에서 만들어지고, 그 양이 엄청나다는 사실만을 문제 삼을 수는 없을 겁니다. 확실히 집중해야 할 대목은 역시 ‘어떻게’가 아닐까요.
2016년 8월, 스웨덴에서 출간된 ‘패션 노예들(원제‘modelslavar’)’은 의류브랜드 H&M의 미얀마 납품 업체가 열네 살 아동까지 고용을 했고, 이들이 하루 열두 시간을 노동했다는 내용을 폭로해 대대적으로 보도된 바 있습니다. 불매운동이 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큰 충격을 받았지요.
그런데 이 장면, 낯설지가 않습니다. 어떤 노래도 떠오릅니다.
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있었던 전태일,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수많은 여성 ‘시다’들.
이쪽에서 저쪽으로, 다시 또 아래로 자리를 옮기는 일련의 과정은 폭탄 돌리기 게임 같습니다. 짹각짹각 무서운 속도로 한계에 달하고 있는 시한폭탄이 단지 내 손에서만 터지지 않으면 된다는 마음으로 이웃에게 떠넘기는 잔인한 게임 말입니다.
값싸고 불공정하게 태어난 제품을 우리는 쓰고, 버립니다. 매일 새 제품이 쏟아지고, 제품을 제조한 회사들은 열렬히 마케팅을 합니다. 어떤 것들은 유행을 합니다. 필요와 소비는 전혀 다른 영역의 단어가 되었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소비와 폐기를 반복하는 삶을 삽니다. 소비자로서의 정체성만 간직한 채로 말이지요.
이것은 좀 무섭습니다. 생각해볼까요. 그 짧고 빠르고 값싼 소비문화가 인간 값까지 싸게 만듭니다. 싸구려 인간 값을 보면서도 마음 아프지 않습니다. 좀 찝찝하긴 하지만 글쎄요. 싸구려 제품을 싼 가격에 ‘득템’ 했다고 기뻐하는 마음보다 싼 인간 값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아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래요. 세상에, 아무리 물건이 싸도 인간만큼 싼 게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인간을 싸게 취급한 결과는 어떻습니까. 구의역에서, 반도체 공장에서, AI 방역 현장에서, 사람들이 죽습니다.
심각하게 생각해 볼 일입니다. 한 장의 팬티가 내게 오기까지, 그리고 버려지기까지 이토록 짧고 싼 과정을 거친다는 사실을 매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무겁게, 아주 무섭게 말입니다.
http://m.yes24.com/Goods/Detail/5250418?Mcode=505
*<빅이슈> 148호에 실린 글을 다듬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