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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Sun Oct 27. 2017

폐기된 여성

기 드 모파상, 「비곗덩어리」

‘비곗덩어리’로 불리는 매춘부

전쟁의 공포는 차츰 사라졌지만 도시는 예전과 달랐습니다. “정복자들은 돈을, 많은 돈을 요구”했고, “견디기 힘든 낯선 분위기가 어떤 냄새처럼, 침략의 냄새처럼 도시 안을 감돌았”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도시를 빠져나왔습니다. 몰려드는 사람들을 피해 새벽 시간을 이용했습니다. 거기에는 고귀한 가문의 백작 부부와 수녀들, 부유한 포도주 도매상 부부와 혁명가 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비곗덩어리’로 불리는 매춘부가 함께 자리했습니다.

모파상의 짧은 단편 「비곗덩어리」를 읽는 방식은 다양할 겁니다. 다만 제게는, 특히 오늘의 나에게는 이 소설이 배제된 존재로서의 여성을 세상이 어떻게 사용하고 폐기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로 읽힙니다.


천박한 암시

처음에는 조용했습니다. 일행은 서로의 존재를 몰랐습니다. 어색함과 두려움이 침묵을 불러왔습니다. 하지만 이내 도시를 빠져나온 안도감이 조심스런 대화와 함께 마차 안에 퍼지고, 비로소 비곗덩어리의 존재가 확인됩니다. 우습게도, 비곗덩어리를 확인하자 공기는 미묘하게 바뀝니다. 비곗덩어리라니. 여자들은 매춘부의 존재로 인해 갑자기 서로 친구가 됩니다. 순식간에 “거의 친밀감까지” 느낍니다. 이것은 본능일까요. 아주 오래 학습된 권력에 대한 본능, 서열확인 말입니다.

은근했던 배척은 교양 없는 포도주 도매상 ‘코르뉘데’로부터 좀 더 본격화됩니다. 주린 뱃속에 술기운이 돌자 “여행객 중 가장 살찐 사람을 잡아먹자”며 비곗덩어리에 대한 간접적이고 천박한 암시까지 한 것이지요. 만만한 대상에 더 쉽게 가해지는 이런 종류의 폭력은 「비곗덩어리」의 첫 번째 문제적 장면입니다.


나는 여러분을 위해서 가는 거예요!

상황은 언제나 위기 앞에서 진실을 드러냅니다. 마차는 예고된 시간을 훌쩍 넘겨서까지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고, 새벽부터 출발한 사람들은 극심한 허기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공교롭게도 단 한 사람, 비곗덩어리만이 음식을 준비해왔습니다. 그는 모두에게 친절을 발휘합니다. 자신이 가져온 음식을 사람들에게 고루 제공합니다. 이에 사람들은 예의를 갖추어 말합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받겠소, 부인.”

두 번째 문제적 장면은 이 ‘부인’이라는 단어에 있습니다. ‘부인’이었던 한 사람이 ‘아가씨’로 낮춰 불리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거든요. 사건은 열한 시간이나 걸려 마침내 도착한 허름한 호텔에서 일어납니다. 그곳에는 군인들이 있었습니다. 장교라는 작자는 비곗덩어리에게 동침을 요구합니다. 비곗덩어리는 거절하고, 장교는 일행 모두를 호텔에 묶어둡니다. 초조한 마음으로 호텔을 떠나길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장교가 아니라)비곗덩어리에 대한 원망이 점점 자라납니다. 그리고.


그러자 모두들 백작에게 가세해 그녀를 달래고, 재촉하고, 설교를 늘어놓아서 마침내 설득시키고야 말았다. 모두 그녀의 개인적 감정으로 인해 생길지도 모를 말썽을 몹시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그녀가 말했다.
“나는 여러분을 위해서 가는 거예요!”(30쪽)


물론 비곗덩어리의 희생은 끝내 배신당합니다. 사람들은 조용하고 음침한 밤을 지나온 비곗덩어리를 불결하다는 듯 외면합니다. “아무도 그녀를 보지 않았고 그녀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벌레(蟲)’ 같은 존재, 여성

「비곗덩어리」의 세계에서 비곗덩어리는 여성기(女性器), 그러니까 성적 대상이라는 것 외에는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하는 존재였으므로 용도에 맞게 이용당한 후, 폐기됩니다. 우리 세계에서, 사회에서, 직장에서, 하다못해 식당에서 배제되고 폐기되는 ‘벌레(蟲)’ 같은 존재가 여성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국가는 ‘출산지도’라는 서비스를 만들어 여성을 자궁으로 수량화합니다. 남성 임금의 63%밖에 받지 못하고, 일과 육아를 병행하다 과로사하고, 성희롱과 성추행 위험에 노출되는 곳이 직장이란 공간임에도 이 고통에는 침묵합니다. 이런 현실을 잘 아는, 결혼에 앞서 조건을 따지는 여성들, 그래서 결혼을 하지 않는 여성들, 혹은 결혼을 했지만 출산하지 않는 여성들에 대해서는 온 나라가 합세해 질책하고, 직장 밖의 공간에서 육아를 담당하는 여성에게는 ‘맘충’이라는 낙인을 찍습니다. 끝내는 식당 출입도 어렵게 합니다(저는 ‘노키즈존’을 ‘논란’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분명한 혐오고, 배제입니다).

모두가 점차 폐기되는 수순입니다. 그래서 남는 것은 ‘된장녀’, 아줌마 혹은 마녀 같은 이미지의 여성뿐입니다.


언제까지나 2등 시민일 수밖에

음식을 기꺼이 나누던, 정치적 신념을 보이던, 대의를 위한 희생적 선택을 하던 비곗덩어리의 면모가 가슴에 깊이 박힙니다. 비곗덩어리를 떠올리면 언제나 가슴이 아립니다. 비곗덩어리의 비극이 결코 은유가 아닌 현실세계에서 여성으로 사는 일의 절망을 곱씹어봅니다. 그리고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여성이라는 존재들을 생각합니다. 언제까지나 2등 시민일 수밖에 없는, 더 중요한 일을 위해 나중을 요구받는, 그래서 늘 덜 중요한, 덜 급한 일로 취급받는 여성의 비극을 머릿속에 새깁니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정당하게 대우받는 다른 세상을 상상합니다. 조금 지치는 일입니다.

어째서 비곗덩어리는 혼자 고통을 짊어지고 눈물 흘려야 했는지, 사람들은 어째서 이 고통에 침묵했는지 조급한 마음으로 따져물어야 합니다. 불편함이 없다면, 지금 내가 누군가를 밟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시민으로서의 마땅한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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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이슈> 160호에 실린 글을 다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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