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후추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eonSun May 01. 2021

혼자 있는 시간

후추일기 여섯 번째


낮 시간에 집에 있으면 온갖 소리가 들려온다. 가장 듣기 괴로운 소리는 자동차 소리도, 사람들의 시끄러운 말소리도 아니다. 어느 집에선가 들려오는 강아지의 처연한 하울링 소리. 한동안 그 소리가 낮이면 어김없이 들렸다. 혼자 있는 것이리라. 그 소리는 도움을 요청하는 것처럼도, 하소연을 하는 것처럼도, 자신의 온갖 어두운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는 징그러운 소리처럼도 들렸다. 가족들은 저 강아지의 낮 시간을 알고 있을까. 동네를 가로지르는 그 서러운 소리, 몇 시간이고 계속되던 그 무서움의 하소연을.(얼마 전부터 그 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강아지가 행복해졌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는 그 소리가 무서웠다. 혼자 남은 공포를 우는 식으로밖에 해결하지 못하고 있을 강아지의 현재가 고스란히 상상되기 때문이었다. 그 소리를 듣던 시절에는 강아지와 함께 살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강아지의 '복지'에 관심 두기는 했어도, 아니 그런 만큼, 충분한 복지를 책임질 수 없는 선택은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강아지라니.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함께 산다는 상상만으로도 겹겹의 슬픔이 몰려왔다. 내가 그 시간을 어떤 방식으로 지나온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후추를 만났다. 나는 외출을 할 때마다 예전에 들려오던 그 슬픈 울음소리를 떠올리게 된다.


후추를 두고 외출을 해야 하는 날이면 아침부터 좀처럼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한다. 조바심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솔직히는 무서운 것이다. 내가 집을 비운 동안에 후추가 공포에 질려 혼자의 시간을 보낼까봐서. 나는 후추가 숙면하기를 간절히 바라므로 오전 시간은 '피곤한 후추 만들기'를 최우선 목표로 한다. 지난 일기에 밝혔지만 후추는 오전에도 한 시간 정도만 놀면 곧 잠에 빠지는데 내가 외출을 해야 하는 날은 일부러 재우지 않는다. 후추는 오전보다는 오후, 그보다는 저녁에 에너지가 넘치는 강아지라 오전 산책은 짧게 바람만 쐬는 정도로 다녀오는 게 보통이지만 외출하는 날은 산책도 좀 길-게 다녀온다. 그러려면 평소보다 훨씬 일찍부터 외출 준비를 해야 하고, 자연히 기상 시간도 빨라진다. 피곤한 일이지만 그때마다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이웃집 강아지의 슬픈 울음소리... 나는 하나라도 더 열심히 외출 준비를 한다.


비장하게 외출하는 내 마음을 적었지만 사실 누가 보면 시트콤이라고 할 정도로 우스꽝스러운 풍경의 연속이다.

1) 큰 귀만큼 소리에 예민한 후추가 밖에서 나는 이런 저런 소리에 깨지 않도록 아침부터 라디오를 켜놓았다. 2) 외출복은 일찍부터 입고 있다. 내가 당장 너를 두고 나가는 게 아니라는 눈속임이다. 3) 책상에 앉아 일하는 척을 한다. 평소 그러고 있으면 후추가 곁에서 잠을 자기 때문에 이것은 어서 자라는 노림수다. 4) 하지만 곁에 자리 잡은 후추는 졸려서 꾸벅대다가도 내가 움직일 때마다 눈을 번쩍 뜬다. 후추와 눈을 맞추고, 손바닥을 펼쳐 보인다. 별일 없다는 뜻. 후추는 다시 눈을 감는다. 5) 이제는 나가야 한다. 나는 조심히 의자에서 일어난다. 그 순간 무릎 관절 소리가 뚝! 하고 난다. 몸까지 나를 안 도와주냐... 후추가 다시 깬다. 6) 좌절한 마음을 수습하고, 다시 한 번 한숨을 쉬고 앉는다. 속으로 50을 세고 조심히 일어선다. 7) 오, 이번에는 관절 소리도 나지 않았고, 후추도 계속 잔다. 8) 이제 조심히. 조심히. 현관까지 왔다. 9) 행여 신발 신는 소리에 후추가 깰까봐 신발은 그냥 손에 들고 문을 나선다. 10) 현관문 밖에서 조심히 신발을 꿰어 신다가 주머니에서 전화기가 꽝! 떨어진다. 에라이. 그러나 저러나 이제부터는 후추의 몫이다. 너무 졸려서 그냥 다시 잠들기를 바라는 수밖에.


그렇게 나왔으니 밖에서는 계속 후추 생각이다. 일을 보다가도 자꾸만 후추 생각이 난다. 혼자 깨서 겁 먹은 건 아닐지, 슬프게 울고 있는 건 아닐지, 수시로 당장 집에 가고 싶어진다. 불안하니까 왜 이렇게 최악의 상황만 상상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문자 메시지나 톡이 오면 아주 잠깐 ‘후추가 연락했나?’ 싶어진다. 중증이다. 분리불안은 이쯤 되면 후추가 아니라 나한테 쓸 말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거의 달리기다. 원래 나는 눈 앞에 있는 횡단보도도 신호가 깜밖이면 안 뛰는 편이었는데 이제는 무조건 저 신호를 건너야 한다는 일념으로 달려 건넌다. 속으로는 연신 '후추야, 내가 간다, 조금만 기다려라'다. 그렇게 집에 오면. 후추는 자다 깬 얼굴로 마치 "뭐했어?"라고 묻는 듯하다. 다시 잘 때도 있다. 허허. 이때의 감정을 '완벽하게 허탈하고 완벽하게 안심인'이라고 해야 할까. 오전에 벌인 외출을 위한 쑈들이 충분한 대답을 들은 것 같아 기쁘다. 한편으로는 이런 줄 모르고 동동동 다녔던 낮 동안의 내가 떠올라 우습다. 동시에 다시는 후추를 두고 외출하고 싶지 않은 그런 이상한 마음도 갖게 된다. 어쩌냐, 나.


이 마음을 어쩌면 좋으냐 고민하다 문득 좋아하는 작가님에게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한참 강아지와 살고 싶어 하면서도 용기를 내지 못하던 때의 일이다. 강아지와 둘이 사는 작가님은 그날 처음으로 긴 시간 강아지를 혼자 집에 두고 외출했다고 했다. 나는 또 기억 속의 강아지를 마음 속에 잠깐 소환했고, 두려움과 걱정스러움을 담아 괜찮을지, 작가님에게 물었다. 그때 작가님이 말했다.


"그 애도, 저도 오늘 더 성장하겠죠."


시간이 지나 강아지와 함께 사는 삶을 맞이하고, 우스꽝스러운 나날을 보내다 잊고 있던 과거의 말이 문득 나를 응원했다. 혹시 서로 힘든 시간을 보냈어도 괜찮다고, 다음으로 나아가면 된다고 말하는 그 말. 조금 더 담대해져야겠다. 성장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그런 생각을 했다. 제일 나쁜 상황만을 가정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나는, 후추는 조금도 자라지 못할 것이 아닌가. 우리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평온하지만 권태로울 것이다. 울타리는 점점 좁아질 것이고, 스스로가 스스로를 가둔 결과를 결국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 편이 훨씬 나쁘다.

나는 이제 후추가 혼자 있는 시간을 너무 무서워만 하지는 않도록 연습한다. 10분 정도 짧은 외출을 하기도 하고, 방에서 문을 닫고 5분 정도 TV를 보기도 한다. 후추는 점점 혼자 있는 시간을 늘린다. 소화한다. 이제는 후추가 잘 때 몰래 나가지 않아도 되겠지?

어떤 말은 시간이 많이 지나도 돌아와 우리를 위로하는구나. 그런 말을 많이 찾고, 기억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뜻밖의 고민들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