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일기 일곱 번째
등을 쭉 펴고, 배와 엉덩이에 힘을 꽉 주고, 팔을 힘차게 저으면서. 좋아하는 걷기 자세다. 그렇게 얼마간 걷다 보면 서서히 데워지는 몸과 몸을 식히는 바람을 느끼는 일도 근사하다. 앞을 보고 씩씩하게 걷다 보면 계절마다 몸을 바꾸는 나무들, 어딘가로 향해 가는 새, 나비, 벌들을 볼 수 있고, 저마다의 자세로 걷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것들을 응시하다가 때로는 여행하는 마음이 된다. 그런 순간을 만들고 싶어 버스나 지하철을 한 정거장 먼저 내리기도 한다. 씩씩하게 걷기. 내가 일상에 활기를 입히는 나름의 방법이다. 이를테면 '잘해보자!' 하고 일상의 등을 팡팡 두드리는 느낌이랄까. 살아 있다는 것을 이런 식으로 느끼는 게 좋다.
한편 이렇게 걷기 위해서는 자연히 먼 곳에 시선을 두게 된다. 내 경우 몸이 재빠르지도 않거니와 동시에 여러 가지를 하는 것은 꿈도 못 꾸는 편이라 걸을 때는 오직 걸을 뿐이다. 휴대전화 확인도 잘 안(못) 한다. 대개는 평화롭고 즐겁지만 황당한 일도 종종 생긴다.
똥을 밟는다거나, 똥을 밟는다거나, 똥을 밟는다거나...
최근에 똥을 밟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 적이 가끔 있었다는 것뿐. 그래도 이렇게 걷는 게 좋으니까 나는 걷는 자세를 바꿀 생각은 없다. 다만 요즘의 고민은 후추와 산책할 때 새로 찾아온 것이다.
세 번째 일기에 언급했지만 풀숲에 똥이 너무나 많다. 후추와 산책하기 전까지 나는 세상에, 주변에 똥이 이렇게 많은 줄은 꿈에도 몰랐다. 먼 곳만 보면서 걸으니까. 드문 드문 설치되어 있는 '반려견 배설물을 꼭 치웁시다' 같은 안내판을 보았어도 그것을 '잔디를 밟지 마시오' 같은 느낌으로 지나치곤 했는데. 배설물을 치우라는 안내판은 알고 보니 매우 간절한 목소리였다. 앞뒤로 생략된 '제발, 절대, 진짜, 진짜' 같은 말을 이제는 볼 수 있게 됐다.
특히 반려견 동행인에게, 몇 발자국 걸을 때마다 보이는 풀숲의 똥은 곧잘 억울한 일을 만들어내곤 한다. 아주 원망스러운 녀석이다.
며칠 전에는 후추와 산책을 하다 마주친 웬 사람이 들으라는 듯이 "ㄱㅅㄲ를 데리고 나왔으면 똥을 제대로 치워야지 미친 인간들 ㅅㅂㅅㅂ..." 하는데 그야말로 황당해서 걸음을 멈췄다. 그 사람의 부정적인 에너지가 얼마나 셌는지 신나게 산책을 즐기던 후추도 그대로 내 옆에 붙어서 나와 그 사람을 불안하게 살펴보았다. 산책을 망치는 경우도 가지가지구나.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똥이 진짜 너무 많다. 후추 이전(앞으로는 before hoochu, BH로 쓸 예정입니다)에는 미처 몰랐다. 바닥의 진갈색 덩어리를 그저 흙덩어리쯤으로 여기고 지나쳤기 때문이겠지. 후추 이후(after hoochu, AH)의 나는 거의 흙이 되어버린 똥까지도 인식하고 만다. 후추가 냄새를 맡기 때문이다. 후추는 죽어버린 지렁이나 나뭇가지, 솔방울 같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그저 호기심에 똥의 냄새를 맡지만. 나는 기겁할 수밖에 없다. 그 와중에 후추 똥도 아닌데 지나가는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상황까지 되면! 얼굴은 본 적도 없는, 저 똥 치우지 않은 인간을 향해 속으로 매우 심한 욕을 날리는 것이다.
도대체 왜 똥을 치우지 않을까?
그대로 두면 흙이 될 줄 알고? 풀숲에는 거름이 될 거라고 생각하나? 강아지가 똥 싼 것을 미처 몰랐으려나? 배변봉투를 챙기지 않았나?
정말이지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다.
후추는 아직 밖에서 편하게 배변하지 못한다. 후추와 함께 한 지 한 달 하고 열흘 남짓. 얘가 밖에서 똥을 싼 건 한 손에 꼽는다. 그래도 배변봉투는 반드시 챙긴다. 그냥 산책 가방에 간식 몇 알, 휴지 같은 것과 함께 넣어두는 것이다. 한 번은 배변봉투를 따로 두고 나오는 바람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찾은 방법은 '양말'이었다. 다행히 후추는 내가 한쪽 양말을 벗어서 버리게 되는 일은 만들어주지 않았다. 후추가 이렇게 똑똑이다. 어쨌든. 똥을 그냥 내버리고 갈 일은 아무래도 없다는 것이다. 지각 있는 성인이라면 이래서는 안 된다. 거듭 강조한다. 똥 쌌으면 챙겨 가세요.
BH의 나에게 누군가가 똥 고민을 많이 하게 될 것이야, 라고 말했다면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당연히 똥은 치우는 거 아니냐고 되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AH의 나는 되받아치는 것이다. 다른 강아지의 똥을 치워야 하나 고민하게 될 날이 올 수도 있어, 라고. 요즘은 그런 고민을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럴 자신이 없다. 왜 똥 싸는 놈, 똥 치우는 놈은 따로 있는 것인가.
각자 싼 똥은 각자 치우는 당연한 세상이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에 많이 화를 내며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