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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후추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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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Sun May 11. 2021

뜻밖의 고민들 (2)

후추일기 여덟 번째


요즘의 가장 크고도 심각한 고민은,

쓰레기 문제다.


많은 시간을 집에서 생활하고, 일도 하는 나는 나름의 규칙으로 집에 있을 때만큼은 쓰레기를 최소화 해왔다. 집에서야 일회용품을 사용할 일이 거의 없으니 아무래도 가장 많이 발생하는 쓰레기는 휴지일 텐데 내 경우 집에서는 휴지 사용을 극단적으로 줄였다. 비염인으로서 휴지를 사용한다치면 워낙 헤프기도 하고, 휴지 먼지가 코/피부에 좋지도 않기 때문에 일찍부터 손수건을 사용했다. 하루에 몇 장씩 사용할 때도 있다. 불가피하게 휴지를 쓸 때는 두루마리 한 칸, 거의 두 칸을 넘기지 않는다. 그마저도 변기에 흘릴 때가 많아 2인 가구인 우리집에서 20리터짜리 쓰레기봉투를 채워 버리려면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었다. 날이 포근해지기 시작하면 쓰레기봉투를 10리터짜리로 바꿔야 할 정도였다. 20리터를 다 채우기 전에 곰팡이나 벌레가 생겼기 때문이다.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후추가 실내배변을 주로 하기 때문이다. 일회용 배변패드가 심각하게 많이 소비된다. 소형 사이즈 패드를 2-3장 펼쳐두는데, 곤란한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은 대개 이런 단계를 거친다.


1) 후추가 하필이면 패드와 패드의 경계에 배변한다.

2) 많이 묻은 쪽은 폐기한다.

3) 살짝 묻은 쪽은 살린다. 새 배변패드를 꺼내 살짝 묻은 쪽을 가리는 방식으로.

4) 후추가 2-3장을 깔아두면 가장 많은 빈도로 배변하는 지점에 살짝 묻은 패드의 깨끗한 여백 부분이 위치하도록 세심하게 배열한다.

5) 4)에서 의도한 대로 후추가 배변을 하면 알뜰살뜰 사용한 패드를 기쁜 마음으로 폐기한다.

6) 때로 후추는 내 마음도 모르고 새 배변패드에 살짝 묻히는 배변을, 그것도 패드를 살리기 애매한 위치에 한다.

7) 6)으로 발생한 패드를 버리기가 아까워 어떻게든 재배치해 살린다.

8) 7)이나 4)에서 의도한 것이 먹히지 않는다. 후추가 패드 바깥에다 배변실수를 한다.

9) 소탐대실이 이런 건가. 바닥을 치우느라 별도의 쓰레기가 한 가득 발생한다. 오마이...


내가 미숙한 탓이겠지만. 후추가 온 뒤로 20리터 쓰레기봉투가 채워지는 속도가 체감상 5배 빨라졌다. 봉투를 무서운 속도로 배변패드가 채운다. 이 패드라는 것은 소변을 흡수하기 위한 것으로, 바닥에는 새지 않도록 비닐로 처리되어 있다. 이건 내가 생각하는 나쁜 쓰레기 중에서도 가장 나쁜 축에 속한다. 그것을 이렇게나 많이 생산하고 있다니. 진심으로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가장 많이 발생하는 쓰레기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사소한 것을 점검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또한 인간의 생활 안에서도 쓰레기가 엄청나게 발생하는데 강아지의 생활 안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만 문제 삼을 생각도 없다. 아쉬운 것은 다른 선택이 있느냐, 는 것이다. 최근에는 배변봉투를 식물유래성분으로 만들어 생분해 된다는 제품으로 구매했다. 어떻게든 비닐 사용을 줄여보려고 애쓰는 중이라 이런 제품이 있다는 것이 무척 반가웠다. 그렇다면 배변패드도 친환경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검색 능력 부족일지도 몰라요. 생분해 되는 배변패드 사용해보신 분들 추천 부탁드립니다!)  

이게 요즘 내 최대 고민거리다.


솔직히는 후추를 핑계 삼아 해보는 고민이기도 하다. 수많은 쓰레기들, 처리되지 않는 것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는 실감을 매일 같이 한다. 외식 대신 선택한 배달음식을 담아오는 비닐과 플라스틱들, 사용하지 않을 테지만 여러 경로로 딸려 오는 사은품(예쁜 쓰레기)들, 한 철 입으면 망가지는 옷들, 튼튼하지 않은 신발들, 매일 쓰는 마스크들, 그 마스크를 포장한 비닐들...


요즘 나는 무엇을 사기 전에, 갖고 싶어 하기 전에 그것이 어떤 쓰레기가 될지를 상상한다. 가령 내가 사용한 지 6년이 넘은 전화기를 바꾸고 싶은 마음이 퐁퐁 솟아 오를 때마다 『어린 노동자와 희귀 금속 탄탈』을 떠올리며 욕망을 잠재우고, 후추가 갖고 놀면 귀여울 장난감을 사고 싶어질 때마다 재사용도 불가한 수많은 플라스틱의 현실을 떠올리며 정신을 차린다. 그러면 대책이 생긴다. 장난감을 후추가 좋아하는 내가 신던 양말을 둘둘 말아 던지는 것으로 대신해보고, 전화기는 그냥 그런대로 사용한다. 욕망은, 꽤나 허황된 것. 갈팡질팡 하지만 그렇게 망설이는 방식으로 속도를 늦춘다. 조금 덜 소비함으로써 조금 더 나빠지는 것을 막고 있다고.


그 속도를 믿는 것이다. 이런 고민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오늘의 소비를 내일로 미루고, 내일의 사용을 모레로 미룰 때마다 조금씩 늦춰지는 속도. 내일은 비록 소비하고 말지라도 모레는 다시 고민을 하고 다른 선택을 해보면서 하루라도 더 덜 나빠지도록 한다면.

아무래도 분명히 뭔가가 달라질 것 같다고 생각한다.

 

희망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고민의 작디 작은 답을, 이렇게 찾아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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