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던 때
지난 일기장을 들춰보다
당신과의 연애기록을 발견했어.
우리 참 애틋하게도 사랑했더라.
아니, 이제 와 솔직하자면
내가 당신을 안쓰러우리만치 사랑했더라.
당신과 자주 가던 맥주집 미닫이문이
드르륵 열리는 소리에 설렐 정도로
우리 사이를 스치던 후덥지근한 여름 바람을
달큰하다고 느낄 정도로
내 이야기에 열과 성을 다해 귀기울이는
당신의 눈빛을 잃기 싫어
이야기 보따리를 달달 긁어
쓸데없는 소리까지 늘어놓을 정도로
당신과 함께 보내는 매시간이 찰나같아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마다
투정부리는 어린 애가 될 정도로
당신이 사무치게 좋아 어쩔 줄을 몰라했더라
우리를 채우던 모든 대화는 새로웠고
우리를 감싸던 모든 공기는 위로였어
특별할 것 없는 반창고 하나에,
손잡고 거니는 중년 부부 한 쌍에,
담요 끝자락에 달랑이는 향기 한 줌에
하루종일 당신을 떠올리느라 나는 늘 숨이 가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