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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Mar 04. 2022

우리

사랑하던 때

지난 일기장을 들춰보다

당신과의 연애기록을 발견했어.

우리 참 애틋하게도 사랑했더라.

아니, 이제 와 솔직하자면

내가 당신을 안쓰러우리만치 사랑했더라.


당신과 자주 가던 맥주집 미닫이문이

드르륵 열리는 소리에 설렐 정도로

우리 사이를 스치던 후덥지근한 여름 바람을

달큰하다고 느낄 정도로


내 이야기에 열과 성을 다해 귀기울이는

당신의 눈빛을 잃기 싫어

이야기 보따리를 달달 긁어

쓸데없는 소리까지 늘어놓을 정도로


당신과 함께 보내는 매시간이 찰나같아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마다

투정부리는 어린 애가 될 정도로

당신이 사무치게 좋아 어쩔 줄을 몰라했더라


우리를 채우던 모든 대화는 새로웠고

우리를 감싸던 모든 공기는 위로였어


특별할 것 없는 반창고 하나에,

손잡고 거니는 중년 부부 한 쌍에,

담요 끝자락에 달랑이는 향기 한 줌에


하루종일 당신을 떠올리느라 나는 늘 숨이 가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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