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석하게도
평온 속에 자란 사람은
불안의 씨앗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운이 좋게도.
반대로 불안의 씨앗을 품은 사람은
평온 속을 유영하는 자들을
이해하지 못하죠, 애석하게도.
씨앗의 기원도 모른 채 전전긍긍,
기어이 발아하지 않을까하는 조바심.
무게도 없는 콩알만한 씨앗 하나 품고 사는 데
인간은 끝없는 자책, 원망, 성찰을 들여요.
언젠가 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육아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부부에게
아이의 타고난 "천성"과 "기질"에 대해 말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내게 아주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기질적 예민함은 질타의 대상이 아니며
천성이 여린 것이 호와 불호의 영역이 아니란 것,
환경과 상황을 조성하면 될 뿐이라는 것이
내 안에서 원인을 찾으려 배회하던
정처없이 지쳐버린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오랜 고심 끝에도 답을 찾을 수 없을 땐
바깥으로 시선을 돌려볼까요.
안정감을 주는 만드는 사람에게 의지하고
다정한 사람, 안온한 사람을 찾아
손을 잡아달라 요청해보기도 하고요.
사람들이 모두 제각각인 건
보완의 의무와 책임과 본성을
타고났기 때문이에요.
혼자 걷는 건 이제 그만하기로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