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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디 리 Apr 14. 2022

남의 아빠를 익숙하게 따라가며

8. 감악산 (2021.11.19 금)




어린 시절 아빠 손을 잡고 산에 오른 기억이 있다. 취미를 등산이라고 소개하면서 담소를 나누다보면 어릴 적 등산경험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 추억에 속한다고 느낀다. 빈 손으로 쭐래쭐래 부모님을 따라 정상까지 올라가는 것인데, 등산이 가볍지 않은 유산소 운동임에도 흔한 과거라는게 놀랍다.


감악산 범륜사 앞에서 앉아 쉬고 있는 아빠와 아들을 만났다. "이쪽이 정상 가는 길이 맞나요?" 나를 보자 아빠는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며 물었다. "네 맞아요. 별다른 코스가 없어서 쭉 가시면 됩니다." 대답하고는 홀연히 떠났는데 말소리가 들려 뒤돌아보니 같은 길을 걷고 있었다.


아들은 초등학교 2학년쯤 되어보였는데, 길고 두툼한 나무 막대기를 지팡이 삼아 열심히 아빠를 따라오고 있었다. 절반쯤 올라 돌부리에 앉아 쉬고 있으니, 아빠는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물었다. 이정표가 없는 산이었기도 하고, 돌길 뿐이어서 불안한 마음이었으리라. "절반쯤 왔어요. 길이 꽤 험해서 정상까지 조금 힘드실 수도 있어요. 아드님이 씩씩하게 잘 오르네요." 응원의 마음을 담아 대답한 뒤 물을 꿀꺽꿀꺽 마셨다.


찰나의 휴식이 끝나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아무리 올라도 부자가 보이지 않았다. '설마, 걸음이 갑자기 이렇게 빨라진다고?' 부자가 길을 잘못 든 것은 아닐지 걱정되었다. 정상 바로 아래 정자에 도착해서 김밥을 먹는데 정상에서 초등학생의 조잘거림이 들렸다. 아마 나보다 10분 이상 빨리 도착한 모양이었다. 초등학생 체력을 만만히 봐서는 안되는구나. 부러움과 이유모를 무력함을 느끼며 김밥을 마저 먹었다.


하산 후 모두가 가지고 있는 등산의 보편적 추억을 곱씹어봤다. 그리고 성장기 체력이 성인의 체력보다 좋기 때문에 어린 시절 부모님 따라 등산한 경험이 많은 것이라는 결론을 냈다. 내가 느꼈던 이유 모를 무력함은 저항할 수 없는 노화과정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젊음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체력을 길러 무력함을 잠재울 순 있다. 오늘도 운동을 열심히 해야하는 이유가 1가지 늘었다.





감악산

2021년 11월 19일 금요일, 감악산에 다녀왔다. 등산로 입구에서 먼 무료 주차장에 차를 대고 한참을 걸었다. 빨간 출렁다리 위에서 힘을 얻고 꽉 막힌 돌길을 오르다 보면 정상이 나오는데 여기도 경치랄 것이 없다. 실망하지 않고 장군봉으로 향하면 꽤 멋진 경치를 볼 수 있다. 하산 시 장군봉을 들리는 것을 추천한다.  



#출렁다리 야-호

파주에는 감악산에 1개, 마장호수에 1개 총 2개의 출렁다리가 있다. 둘 다 건너 본 유경험자로서 마장호수 다리가 더 재밌었다. 발 아래 물이 출렁거려서 짜릿함이 있고 주변 풍경도 조금 더 광활하다. 나의 경우, 마장호수에서는 출렁다리가 목적지였고, 감악산에서는 출렁다리가 경유지였기 때문에 객관적인 비교가 어려울 수도 있겠다. 다리 위에서 다양한 사진을 찍고 싶어도 항상 인파에 휩쓸려 애매한 사진만 건지는 것이 아쉽다.



#평범한 산행

이번 산행도 등산객 몇 명과 고양이 한마리, 지는 해를 만난 평범한 날 중 하나였다. 특별한 것은 없지만 나를 기쁘게 하는 요소가 모여있는 하루라고 할 수 있다.


아빠와 아들 등산객을 만나 대화한 순간, 정상 부근에서 고양이와 15분 가량 눈을 맞춘 순간, 붉은 노을을 감상한 순간. 여러 순간이 모여서 평범이라는 마법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산행을 마치며

감악산은 '악'산에 돌길이 많은 편이지만 그래도 '악' 소리는 덜 나는 산이다. 그래서 부담을 조금 덜어내고 편안한 마음으로 오를 수 있었다. 감악산은 파주 끝자락에 있어서 산행시간보다 산까지의 이동시간이 더 긴 등산객이 분명 있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일에 출렁다리를 보러 많은 등산객이 왔던 것을 생각하면 한국은 역시 산의 민족인 것 같다.


그 날 일기에는 이온음료말고 물을 꼭 챙기라는 메모가 있는데, 아마 물 대신 이온음료를 가져가서 호되게 혼났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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