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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디 리 Mar 26. 2022

'좌'의 기준은 각자 정하기로 해요

2. 소요산 (2021.09.18 토)



 

산악인들은 "몇 좌 다녀오셨나요?"라는 질문으로 상대방의 등력(登力)을 확인하곤 한다. 여기서 '좌'의 기준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로 '지리 좌(座)'는 산이나 탑을 세는 단위를 뜻한다. 즉, 히말라야와 같이 지구 상에서 8,000미터가 넘는 산에만 16좌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70% 산지로  8,750개의 산이 있는 만큼  곳을 선정하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코카콜라 맛있다 맛있으면  먹지 척척박사님 알아맞혀 보세요 딩동댕동댕' 매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기준으로 목표를 세우고 즐겁게 산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개'를 붙이던 동네산에도 '' 붙이기로 했다. 모든 산은 나에게 항상 영감과 감동을 는데 나만의 기준으로 산을 차별해선 안된다는 생각이다. 사과는  , 배추는 다섯 포기, 곶감은  줄처럼 산을 세는 단위는 '좌'인데 모두 알았지만 나는 몰랐던 당연한 논리다.





소요산

2021년 9월 18, 소요산에 다녀왔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첫 주말이라 그런지 등산로가 한가했다. 소요산은 돌계단과 나무계단, 흙길이 섞여있으며 대체로 쉬운 산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중간중간 사진 스팟용 데크도 마련되어 있어 땀을 식히고 경치를 감상하기 아주 좋다.



#장비가 없어도 행복해요

면 티가 아닌 기능성 티를 입었다. 그리고 코튼 캡이지만 모자도 제대로 착용했다. 욕심 많은 내가 장비를 완벽하게 갖추지 않고 시작한 것은 처음이다. 완벽의 뒤에는 수많은 검열이 있기 때문에 완벽이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행복하자고 시작한 산행이기 때문에 완벽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시작이 반으로 어차피 시작만 하면 장비는 자연스럽게 갖추어지게 되어있다.



#얼룩고양이와 함께

공주봉에는 얼룩고양이가 상주하고 있다. 꼬질꼬질하고 사랑스러운 존재. 밥그릇이 비어있었는지 내 눈을 보며 '야옹'하고 말했다. 11년 차 집사인 나는 밥 달라는 뜻을 즉각 알아챘다. 실컷 얼룩이와 놀아주고 나니 소요산 아래의 마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정상에서 바라본 세상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가까이서 바라본 세상도 이와 같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나였다.



#산에 안 왔으면 아까웠을 날씨

공주봉에서 충분히 휴식한 후에 의상대로 발길을 옮겼다. 의상대 가는 길에도 초록색이 가득하다. 물안개와 미세먼지가 없는 하늘이 얼마만인지. 초록이들을 한 움큼씩 쥐어 눈에 직접 넣는듯한 기분을 만끽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산에 가서 기분이 좋은 걸까, 아니면 기분이 좋아서 산에 가는 걸까? 왜냐하면 보통 사람들은 날씨가 좋은 날 하늘을 바라보며 '거 참, 산 가기 딱 좋은 날씨네'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내가 '산에 안 왔으면 아까웠을 날씨네'라고 자주 말하는 것처럼. 인과관계를 짚어내기 어렵지만 기분과 산은 주요한 상관관계에 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기분이 좋은 날, 좋지 않은 날을 따지지 않고 산을 찾게 되는 것 아닐까?



#정상의 뿌듯함

의상대는 찜통 그 자체였다. 직사광선이 정수리를 직통으로 내리쬐는 바람에 땀이 한없이 흘렀다. 선크림은 땀에 흘러내린 지 오래에 머리를 식힌다고 모자를 자주 벗었으니 이 날 얼굴에 주근깨가 적어도 3개는 추가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참고로 나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주근깨가 많았다.) 데크를 360도 돌아본 다음 의상대와는 빠르게 안녕을 고했다.



#산행을 마치며

그날 산행 일지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 포카리스웨트 같은 이온음료 무조건 챙기기

- 당도 높은 행동식 필수로 챙기기 (이왕이면 초콜릿)

- 물은 항상 얼려서 가져가기 (미지근한 물은 싫어)

- 등산장갑 꼭 가져가기 (나중에는 기어서 하산한다)

- 등산화는 묻지도 말고 중등산화


무조건, 필수, 항상, 꼭과 같은 강조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한 것을 보니 산행이 굉장히 고되었나 보다. 위에서 장비를 완벽히 갖추고 산행을 시작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긴 했지만, 장비가 산행의 난이도를 낮춰주는 건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최소한의 장비로 행복하게 산행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현재까지의 경험으로 첨언하자면,

- 포카리스웨트 분말이 있다. 올라가면서 물을 마시고, 정상에서 이온음료로 제조하여 마시는 것을 추천한다.

- 초콜릿도 좋지만 포도당 캔디가 급격하게 떨어진 체력을 보충하는데 도움이 된다.

- 물은 얼리지 않고 미지근하게 마시는 것이 뜨겁게 땀 흘린 몸의 신진대사에 좋다.

- 등산장갑은 한겨울을 제외하고는 브랜드 없는 코팅 내피 장갑이면 충분하다.

- 등산화는 묻지도 말고 중등산화로 발목을 보호하자.


과거의 이야기를 쓰면서 좋은 점은 성장한 나를 발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내가 살짝 귀엽게 느껴지기도 한다는 것. 맑았던 9월의 하늘을 떠올리며 2번째 포스팅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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