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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디 리 Mar 27. 2022

자각하지 못했던 정상석의 의미

3. 수락산 (2021.10.02 토)




표지석 훼손 및 도난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 방화로 인한 산불 사태로 마음 한편이 시려 한동안 뉴스를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표지석까지 위협받고 있다니. 산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참 비통한 일이다.


표지석은 주봉의 정상뿐만 아니라 봉우리마다 있는 경우가 많다. 수락산만 하더라도 주봉과 도정봉, 도솔봉, 장군봉과 같이 다양한 봉우리가 있다. 봉우리의 꼭대기이니 주봉 여부와 관계없이 모두 정상석(정상 표지석)으로 부를 수 있다. 그런데 수락산의 주봉, 도정봉, 도솔봉 정상석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정상석에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된 요즘, 정상석의 진짜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사람들은 왜 정상석을 찾는 것일까? 나는 정상석이 가진 신묘한 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상'이라는 명사가 가진 뜻은 몹시 매력적이다. 그래서 정상에 오르면 가장 꼭대기에서 최고의 감정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최고의 감정에는 인정, 명예와 같은 사회적 욕구가 내포되어 있을 수도 있겠다. 감정과 욕구를 채워주는 정상석은 신묘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 훔쳐갔나?' 생각하기도 한다.


산을 즐겨 다니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정상석의 스펙트럼은 굉장히 넓다. 정말 얼굴만 한 미니 정상석부터 한자로 휘날리듯 새겨진 모양, 한글로 또박또박 쓰인 글씨, 나무를 파서 만든 정상석, 대리석을 조각한 정상석 등등. 정상석은 산의 이미지를 담고 있어서 소재, 서체, 모양, 크기에도 애정이 묻어난다.


산행 경력이 짧은 나조차도 정상석에 애정을 느끼는 것을 보아 단순히 인증사진용이 아님은 확실하다. 저마다 산에 가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정상석에 대한 생각은 나와 비슷하길, 모두가 애정 있는 눈길로 바라봐주길 욕심부려본다.


 



수락산

2021년 10월 2일 (토), 수락산을 다녀왔다. 하늘이 청명하고 덥지 않은 날씨여서 편한 마음으로 산에 올랐다. 다만 쉬운 산은 아니므로 튼튼한 신발과 장갑이 필요하다. 그리고 마냥 겁먹지 않는 마음도 한 스푼 필요하다. 나는 미리 두 스푼을 챙겼지만 그래도 겁은 먹었다.



#급한 불은 되도록 도심에서 해결하기

석림사에는 흰둥이와 검둥이가 낮잠을 자거나, 신나게 뛰어놀고 있었다. 나는 그 앞에 협소하게 마련된 곳에 주차를 하고 황급히 화장실로 달려갔다. 소요산 화장실이 잘 정비되어있어서 산 아래 화장실은 당연히 다 그런 줄 알았다. 석림사에는 푸세식 화장실이 있다.


전래동화나 역사책에서만 봤던 공간을 이렇게 만나다니. 놀란 가슴을 가다듬고 조금만 더 올라가면 현대식 화장실이 있다. 소요산만큼은 아니지만 급한 불을 끄기엔 알맞은 장소라고 생각한다.



#겁은 대비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기차바위 코스에는 로프가 등장한다. 안전요원이나 장치 없이 다이나믹 코스를 갈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런 클라이밍은 하체 힘으로 하는 것이 맞으나 그 당시 나는 떨고 있는 다리보다는 동아줄을 잡고 있는 팔을 선택했다. 상체도 아닌 오로지 팔 힘으로만 올라갔다.


콩벌레처럼 바위에 붙어서 안전지대에 도착하니 발아래 모습이 보였다. 다들 긴장한 내색 없이 산행을 즐기고 있는데 나만 마냥 겁먹었구나. 하지만 겁은 미리 대비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녀석이 아니다.



#정상석아, 반갑다

내 몸통만 한 수락산 주봉 정상석. 한글로 또박또박 새긴 필체가 정성스러우면서도 귀엽다. 자주색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의 차림으로 인증사진을 찍었다. 엄마의 등산용품을 물려받아서 그녀의 취향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나는 자주색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은 아주 마음에 든다. 글 쓰는 현재 시점에서 태극기와 함께 찍은 주봉의 정상석이 그립다.



#술악산의 면모

기차바위를 통과한 뒤로는 텐션이 하늘 높이 올라갔다. 하산 중 바위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는 용기까지 냈다. 수락산은 '바위를 타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아까는 로프로 바위를 올랐다면, 내려갈 때는 스테이플러(스템플러)를 밟게 된다. 역시 술'악'산이구나.



#산행을 마치며

산행 당일에 작성한 후기에는 앞으로 추가로 챙길 준비물을 야무지게 써놨다.

- 비누, 휴대용 물티슈, 휴지, 등산스틱!!!!


등산스틱은 하산하면서 무릎이 아파왔기 때문일 것이고, 나머지 3개 항목은 푸세식 화장실의 여파라고 추측한다. 수락산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으면 다시 한번 기차바위의 스릴을 즐기고 싶다. 수락산을 그리워하며 포스팅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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