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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디 리 Apr 04. 2022

최단코스를 좋아하세요?

4. 남한산 (2021.10.16 토)




글을 쓰기 위해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남한산에 대한 추억이 없다. 허가되지 않은 최단코스로 의미 없게 정상만 찍고 돌아온 탓이다.


원래는 남문 주차장을 이용하여 둘레길로 다녀올 예정이었으나 토요일의 차량과 인파에 밀려 망월사까지 이동하게 되었다. 다른 주차장은 만차였는데 이상하리만큼 망월사는 텅 비었다. 처한 상황 5%와 내 욕심 95%로 망월사에서의 산행을 결정했다.


나는 최단코스를 참 좋아한다. 산행이 너무 힘들었던 초기에 고통의 시간을 단축시키고자 최단코스에 눈을 떴다. 그런데 체력이 어느 정도 올라온 지금도 산행의 효율을 따지며 '최단'이라는 단어를 밝힌다. 이럴 땐 스스로를 환기시키는 장치가 필요하다. 프랑스인이 높은 확률로 브람스를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시몽이 폴에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질문했던 것처럼.


최단코스를 좋아하세요?  스스로를 환기시키는 질문이다. 과연 나는 산을 좋아하는 것인지, 단순한 성취를 좋아하는 것인지. 답변은 의도적으로 '아니오'. 나는 산을 좋아해서 산에 오르는 사람이고 싶으니까. 진정한 산악인은 최단코스를 선호하지 않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남한산

2021년 10월 16일 토요일, 남한산성에 다녀왔다. 의도치 않게 비허가 등산코스로 다녀와서 최단거리와 최단시간의 산행이 되었다. 남한산성의 진면목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꼭 정상코스로의 산행을 추천한다. 후다닥 다녀온 만큼 기억에 남는 것이 없어 여러모로 아쉽다.



#등산로 없음!!!

등산로가 없다는 문구를 2번 이상 마주쳤다. 고민했지만 이대로 돌아간다면 시간이 늦어 산행이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심보 고약한 도둑마냥 살금살금 산신각을 올랐다. 기대로 두근대는 산행이 아니라 들킬까 봐 두근거리는 산행의 시작이다.


여러 차례 강조한 만큼 길이 없다. 갈색 낙엽으로 뒤덮인 땅을 헤집으며 없는 길을 만들었다. 밝은 햇살과 대비되어 으스스한 분위기가 난다. 하지 말아야 하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 몸으로는 하는 행위는 얼마나 자기 파괴적인가.



#기억나지 않는 남한산성

단숨에 서문과 벌봉을 지나 마루석, 삼각점에 도착했다. 허무하리만큼 빠르게 도착해서 정상 근처를 기웃거렸다. 지나가는 대부분이 등산복 차림인데 우리만 나들이 차림이었다. 마치 모범생들 앞에서 꼼수로 시험을 치른 날라리 학생들 같았다. '트레킹화라도 신고 올걸 그랬다 그치?' 머쓱함에 웃으며 말했다.



#여전히 평화로운 망월사

원점 회귀로 망월사에 돌아왔다. 조용한 망월사에서 우리가 정상을 다녀왔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반성하는 마음으로 불전에 바나나를 공양했다. 거룩한 공양물은 아니었지만 해당 행위를 통해 죄책감을 조금 덜었다.



#추천하는 코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남한산성의 동서남북을 둘러볼  있는 5코스를 추천한다. 마루석을 만나고 싶다면 동장대터에서 벌봉까지 다녀오면 된다. 벌봉에서 정상석이 멀지 않으니 인증까지 겸사겸사 가능하다.


남한산성의 성곽을 유심히 살펴보면 돌의 종류나 성곽을 쌓은 모습이 제각기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역사의 다채로움이 보존된 곳을 공들여 돌아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나도 돌아오는 봄날 남한산성에 갈 채비를 해야겠다. 오늘도 과거를 반성하며, 미래를 채워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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