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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디 리 Jul 02. 2022

산악회와 마사지샵의 공통점은?

19. 용마산&아차산 (2022.02.20 일)




바로 건전 또는 불건전 중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순간, 색안경을 낀 흑백 세상이 펼쳐진다. 까만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다면, 하얀 눈으로 뒤덮인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 나도 예전엔 등산 모임을 불륜의 장으로만 여겼다. 자극적인 편견은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기 제격이기 때문이다.


직접 경험해보니 산악회만큼 건전한 모임도 없다. 산이라는 목적 하나로 모여 처음부터 끝까지 산 이야기뿐이다. 다녀온 산 자랑부터 등산코스 추천, 장비 소개 등등. 다른 목적을 품고 온 사람은 섞이지 못하고 들머리에서 중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산악회의 가장 큰 매력은 혼자가 아님을 진하게 실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통분모가 확실하므로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즐겁다. 함께 산에 갈 지인이 고갈되었거나, 나 홀로 산행에 지쳤다면 등산 모임을 최고의 옵션으로 추천하고 싶다.





용마산 & 아차산

2022년 2월 20일 일요일, 산악회에서의 첫 등산이었다. 모르는 사람과 산을 오르는 것에 기대감보다는 불안감이 컸는데, 예상과 달리 별반 다를 것 없이 즐거웠다. 등산 모임에 익숙해지려면 도심 산에서 시작해서 천천히 근교 산으로 뻗어나가는 것이 좋겠다.



#본명은 궁금하지 않아

만나서 어색한 인사와 짤막한 자기소개 후 바로 들머리에 올랐다. 서로를 닉네임으로 불렀는데, 등산을 목적으로 만났으므로 개인정보는 사치에 불과했다. 본명보다 중요하고 궁금한 내용은 '언제부터 산에 올랐는지, 얼마나 많은 산을 갔는지, 좋았던 산은 어디인지, 어떻게 그렇게 체력이 좋은지'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새로운 관계에 대한 긴장감이 조금씩 풀렸다. 내가 몇 살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누구를 만나는지와 같은 정보만 제외해도 관계의 무게가 훨씬 줄어들었다. 암묵적인 규칙이 아니라 서로 궁금하지 않기 때문에 묻지 않는 것. 산 오르는데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본인 페이스를 알아가기

체감온도가 영하 15도로 눈 온 다음날이었는데도, 몸이 후끈 달아올라 패딩을 벗고 바람막이 차림으로 올랐다. 이전에는 내가 산행을 주도했기 때문에 타인의 속도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내가 원할 때 쉬었고, 원할 때 하산했다. 타인의 페이스를 처음 경험해보니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도 뭔가 편히 '우리 쉬어요'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점차 헉헉 소리가 거칠어지며, 시간이 지나면 폐가 아픈 느낌이 든다. 아무리 숨을 크게 쉬어도 폐까지 공기가 닿지 않는 느낌이다. 여기부터 사점(dead point)에 도달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보통 사점이 지나면 정상호흡(second wind)이 돌아오는 것이 맞지만, 나의 경우 위장이 꼬이는 느낌과 함께 강력한 어지럼증이 찾아왔다. 본인의 페이스조차 모르는 내가 타인의 속도에 무작정 맞추다 보니 사단이 난 것이었다.


주저앉아서 한참 숨을 고르니 호흡이 돌아왔다. 트랭글 평균속도는 3.2km로 처음 보는 숫자였다. 고개를 들어보니 정상 부근이었다. 계단을 2개씩 올랐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 정상에 올라 딸기를 먹으며 '체력 좋은 사람이 많구나' 생각했다. 본인 페이스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연계산행! 좋구나

용마산 정상에서 1차 위기를 넘기고 아차산까지는 살방살방 걷기로 했다. 힘들어서 보지 못한 남산타워도 보고, 롯데타워도 봤다. 용마산과 아차산은 낮은 고도임에도 속 풀리는 풍경을 주는 좋은 산이다. 용마산에서 아차산 정상까지는 38분이 걸렸다. 산등성이를 넘어 2개의 산을 한 번에 다녀올 수 있다니.




#산행을 마치며

산행을 마치고 바로 귀가하려 했으나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사람들과 시간을 조금  보내고 싶었다. 산 아래 음식점에서 두부와 막걸리를 시켜 30 정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간단히 요기하고 약간은 알딸딸한 상태로 지하철을 탔다.


카톡방에 올라온 사진에는 내 뒷모습도 있었다. 가파른 구간을 힘들어하는 모습부터 풍경을 보며 쉬는 모습까지 처음 보는 내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훈과 함께 산을 오르면 훈의 사진만 잔뜩 있다. 훈은 나를 찍어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내 사진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감동이 몰려왔다. 종종 산악회에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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