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사패산 (2022.05.21 토)
분명 의정부 원각사에 차를 대고 등산을 시작했는데, 산행이 끝나니 처음 보는 양주 원각사에 도착했다. 2곳의 원각사를 방문한 바쁜 하루였다. 의정부 원각사 코스는 뻥 뚫린 경치에 암릉 구간이 있어 타는 재미가 충만하다. 무엇보다 포대능선에서 바라본 산줄기가 기가 막히게 멋지다. 양주 원각사 코스는 경치는 없지만 사패산 정상까지 군더더기 없이 이어진다. 빠르게 올라 정상 풍경을 만끽하고 싶다면 만족할 코스다.
#강아지에게 배웅받기
블로그에서 본 것처럼 강아지가 반겨주는 원각사. 초입 가게에서 한가롭게 누워있던 강아지가 심심한지 들머리까지 쫄래쫄래 따라왔다. 흙에서 잔뜩 뒹굴어 꼬질꼬질했지만 생기 있는 눈이 반짝였다. 강아지 배웅을 받고, 힘차게 산행을 시작했다. 알아본 바로 사패산은 500m 남짓의 왕복 2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산이었다. 일몰 시간인 7시 30분에서 역산해 안전하게 5시에 출발했다.
#어, 정상이 이렇게 멀었나?
약수터와 단군한배검 제단을 지나 쭉쭉 올랐는데 정상을 만날 시간에 헬기장이 나타났다. 의아했지만, 일몰시간이 코 앞이라 생각은 젖혀두고 잰걸음으로 이동했다. 바쁜 와중에 길도 잘못 들었다. 포대능선의 오른쪽 샛길로 빠져야 하는데 왼쪽으로 가서 도봉산 방향으로 한참 직진했다. 마음이 불안했지만 경치가 참 멋진 암릉코스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도봉산을 살짝 걸쳐서 사패산에 돌아간 셈이다.
#광야 같은 사패산 정상
얼마나 마음이 급했는지 바로 정상 사진이다. 평평한 암릉 위 덜렁 있는 정상석, 하늘엔 원을 그리며 배회하는 까마귀 떼. 사패산 정상은 광야 같아서 고독하지만 우아한 정취를 풍겼다. 잠시 넋 놓고 석양을 구경하니 성난 바람이 불어와 급격하게 추워져서 오래 머물지 못했다. 어쩌면 빨리 정신 차리고 내려가라는 바람의 충고였을 수도.
#어, 원각사가 이렇게 가까웠나?
올라올 때와 같이 조급한 마음으로 내려가던 중 원각사까지 1km라는 이정표를 보았다. 분명 우리는 5km 넘는 산행을 했는데 그렇게 빨리 하산할 수 있다는 것이 의아했다. 이때 원각사가 2곳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지금에서야 눈치챈 나의 둔함에 통탄할 일이지만 어두컴컴한 산을 거닐지 않아도 되는 사실에 기뻤다. 하산한 코스는 풍경이 막혀있지만 길이 편하고, 짧다. 그래, 이런 길이 최단길이지. 풍경이 없는 덕에 미련 없이 빠르게 내려올 수 있었다. 하산은 30분 만에 완료했다.
#원각사에서 택시 타고 원각사 가기
안녕 원각사야, 반갑다. 하산할 때라도 만나게 되어 다행이야. 블로그에서 본 것처럼 여기 원각사도 강아지가 많았다. 지독한 수미상관 등산이었다. 주차해 둔 의정부 원각사로 이동하기 위해 양주 원각사에서 카카오택시를 불렀다. 택시가 오기 전까지 트랭글에 기록된 산행 기록을 보며 어이없음의 시간을 가졌다. 출발지인 원각사 상세 주소를 확인하지 않은 실수에서 시작된 대장정이었다. 택시 기사님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니 '처음 겪는 일이지만 충분히 헷갈릴만하네요'하며 허허허 웃으셨다. 의정부 원각사까지는 약 20분 거리였고 택시비는 11,300원이었다.
#산행을 마치며
낮에 만난 강아지를 3시간 30분 만에 다시 만났다. 어둠이 깔린 산속 마을이라 가로등도 없어 주차해 둔 곳까지 걸어가기 무서웠다. 낮에 졸졸 따라오던 강아지도 귀찮은지 같이 가자고 불러도 요지부동이었다. 눈알을 데구루루 굴리며 고개만 까닥할 뿐이었다. 동행은 포기하고 핸드폰 플래시를 켜서 주차한 장소까지 뛰어갔다. 차에 타서는 귀신이 나올 새라 후다닥 엑셀을 밟아 망월사역까지 내려왔다. 아마 나처럼 덜렁대는 사람 중에 똑같은 경험을 한 사람도 있겠지? 코스를 착각하는 건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지만 한 번쯤은 웃어넘길 수 있는 추억을 만드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