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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욕심많은워킹맘 Mar 11. 2018

아이에게 엄마가 있어야 한다는 말, 어디까지 진실일까

아이 인생에서 부족한 엄마 손길 '때문'이 아니라 '덕분'으로 기억되길



연말 시즌이 다가올 무렵이 되면, 학교에서는 학예회며, 발표회를 연다. 작년에는 학년별로 강당에서 공연했는데 올해는 학급별로 한다. 장기 자랑을 개인전 / 그룹전으로 신청서를 내라는 공문이 왔는데 뭘 해야 할지 몰라 신청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사람만 참여하는 줄 알았는데 담임 선생님이 하나라도 꼭 해야 한다며 공문을 되돌려 보내셨다. 이렇게 되니 난감해진다. 반 분위기에 맞춰 ‘알아서 하겠지’라는 생각으로 내버려 뒀다. 나중에 보니 미참여 인원 중에 남은 아이와 종이접기를 한단다. 그래도 다행히 하나라도 하는구나 싶어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학예회를 며칠 앞두고 같은 엄마들 단체 대화창에 대화가 열렸다. 그런데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들을 보니 다들 그룹전 하는 아이들끼리 벌써 집에서 작품을 만들어내고 뭔가 그럴싸한 공연을 만들어내는 분위기였다. 아이 숙제가 아니라 결국은 엄마의 손길이 있어야 하는 '엄마 숙제'였던 것이다. 그 순간,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는 걸 알고 같은 반 엄마들에게 여기저기 전화를 했다. 보아하니 개인전 1, 그룹전 2개까지 해서 참여하는 거란다. 다들 엄마들끼리 소통하며 친구네 집에서 각자 그룹별로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나는 신경도 안 쓰고 있었는데,
결국은 모두 엄마 숙제였구나’



일하는 엄마라는 핑계로 제대로 신경을 써주지 않은 것 같아 미안했다. 아이 말로는 발표회를 피아노 연주를 하는 아이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반에 피아노가 없을 텐데 연주할 수 있을까 싶은 궁금증이 생겼다. 퇴근 후 집에 가지 않고 아파트 주차장에서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느라 차 안에 꼼짝없이 있었다. 반에서 똑 부러지고 야무진 딸을 키우는 엄마에게 상황을 설명했더니 반별로 피아노를 순서대로 빌려서 연주를 한다고 한다. 일단 담임 선생님께 전화를 해서 일정을 조율해보라는 조언을 듣게 되었다. 다행히 담임 선생님이 학예회 초대장을 내일 인쇄하려던 참이었다며 절묘한 타이밍에 전화를 주셨다며 웃으셨다. 그리하여 평소 피아노 학원에 다니니 피아노 연주라도 하는 게 낫겠다 싶어 피아노 연주 일정에 엽이도 넣게 되었다.


학예회를 보면서 다들 많은 준비를 했었다. 엄마와 함께 만든 자작 시를 낭송하는 아이도 있었고, 친구들끼리 의상까지 세트로 맞춰 직접 그린 그림을 설명하기도 했었고, 엄마의 손길을 확연히 드러내고 있었다. 종이접기 발표하는 아이 모습을 보자 엄마 손길의 부재가 너무나도 표시가 났다. 큰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드디어 피아노 연주 순서가 되었다. 여자아이 두 명이 먼저 연주 후 마지막에 남자아이인 엽이가 피아노 연주를 시작했다. 긴장되는지 얼굴에 웃음기 하나 없이 경직된 표정으로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곡명은 베토벤 바이러스였는데 연주가 시작되자 반전도 시작되었다. 피아노를 치는 엽이 손길이 엄청 빨랐다. 손이 어느 건반을 치는지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피아노 연주 실력으로 내 귀에는 다들 감탄하는 소리를 냈다. 


엽이의 피아노 연주가 끝나자, 다들 힘찬 박수 소리와 함께 환호가 어우러졌다. 그 시간만큼은 내 아들이 자랑스러운 시간이었다. 일하는 엄마라는 핑계로 아무것도 신경 써주지 못하고, 부족한 엄마 손길에도 아이는 아이의 역할을 충분히 소화해내고 잘 해내고 있었다. 그렇게 학예회가 끝나고 같은 반 엄마는 엽이가 피아노를 얼마나 배웠는지 물었고, 엽이한테는 어떤 할머니가 어느 학원 다니는지 직접 물어보셨다고 한다. 그렇게 반에서 피아노 잘 치는 남자아이로 각인되는 시간임은 확실했다. 엄마 손길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평소 실력으로 멋진 무대로 만든 아이가 참 기특하고 대견했다. 그 모습을 보는 남편도 나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미안함으로 시작했던 학예회가 마지막에는 고마움과 대견함으로 마무리했다. 


워킹맘의 삶에는 가장 크게 두 번의 고비가 있다. 첫 번째로는 아이가 태어나서 첫 3년인 흔히들 말하는 애착 형성 시기, 그리고 두 번째로는 초등학교 1학년인 첫 공교육을 시작하는 시기이다. 두 시기의 공통점은 “처음”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첫 번째 의미는 엄마의 양수 속에서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세상, 그리고 두 번째 고비는 공교육을 “처음” 접하는 초등학교 1학년이다. “처음”이라는 단어는 새로움, 설렘이라는 감정을 넘어서 걱정, 불안도 동반한다. 워킹맘에게 초등학교 입학은 학교에 간다는 것 그 이상이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해온 ‘보육’ 차원이 아니라 ‘첫 공교육’이 시작되는 첫 관문이다. 그래서 다들 초등학교 1학년이라는 시기를 맞이하면 퇴직을 고민한다. 실제로 미취학 아동들을 키우는 주위 워킹맘을 보면,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일을 그만둘 것이라고 계획하는 이들이 많다.  


2017년 3월 입학 시즌에 한국경제신문에서 워킹맘의 퇴사 고민’이라는 주제로 기사를 발표했다. 과거 직장 생활 경험이 있는 학부모 중 일을 그만둔 계기 1위로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돼서’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퇴사를 결심하는 이들을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예전에 EBS TV 방송에서 선배 워킹맘의 인터뷰 내용이 참 기억에 남는다. PD와 워킹맘으로 자녀를 키운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었다.



PD : 아이가 어렸을 때 일을 하신 거 같은데 아이한테 미안하지 않으세요?


엄마 : 어렸을 때는 다른 엄마들에 비해 많이 못 챙겨줬으니까 미안하죠. 그렇지만 지금은 결과적으로 미안하지 않아요. 제가 만약 일하지 않았다면 아이한테만 더 집중했을 거고 수많은 정보로 아이를 잡았을 수도 있는데 제 관심이 분산되었기 때문에 아이를 더 편안하게 포기할 건 했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아이들이 감사할 일이죠.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욕심이 많다. 자녀 교육에도, 내 일에도, 내 꿈에도 잘 하고 싶은 의욕도 높다. 하지만 일을 함으로써 그 욕심을 내 업무로 열정을 분산시키고 그 나머지 에너지를 아이에게도 분산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은 반반씩 나눠서 분산시키는데 50%의 조금 부족한 열정이 내게는 오히려 더 큰 시너지 효과로 되돌아온다. 나의 부족한 손길임에도 아이가 70점을 해내면 기특하고 대견한 일이 되고 일이든, 육아든, 100% 올인했더라면 나에게는 100점을 바라는 욕심이 되는 상황이라 더욱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일을 한다는 게 오히려 나에게 득이 되는 상황임은 틀림없다. 



며칠 전, 업무 중에 큰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저 오늘 방과 후 로봇 하는 날인데 깜빡하고 놔두고 왔어요.”

“그래? 그럼 어떻게 하지? 엄마는 일하고 있어서 갖다 주지 못하는데, 학교 마치고 집에 가서 가져올래?”



아이는 알겠다는 씩씩한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학교 마칠 시간쯤에 로봇 방과 후 수업에 출석하였다는 알림 메시지가 도착했다. 큰 아이의 엄마가 내가 아니었다면, 아이의 부족함을 대신 채워 줄 수 있었겠지만, 나의 현실은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 경험으로 아이는 앞으로 방과 후 준비물을 챙기는 것에 조금 더 깊은 주의를 기울일 것이다.




결국은 일한다는 이유로 엄마의 50% 부족한 관심과 손길 덕분에 아이가 채워야 할 몫으로 반이 남아있다. 그 나머지 반은 아이 몫으로 내가 남겨두는 거로 생각한다. 비록 엄마인 내 마음에는 조금 더 살뜰히 챙겨주지 못하는 미안함, 부족한 손길 때문에 불완전한 아이의 학교생활인 것 같아 죄책감이 휘몰아치지만, 한편으로는 덕분에 그 부족한 나머지는 아이는 스스로 채워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서로 긍정적인 채움이고, 부족함이 된다. 



아들러의 심리학에서 육아의 목표는 ‘자립’이라고 정의했다. 부모는 아이가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라고 정의한다. 바꿔 말해, 워킹맘의 아이는 어쩌면 조금 더 일찍 스스로 해야 할 일과 과제를 해결하면서 좌충우돌 시행착오를 겪는다. 나는 그것을 기회라고 생각한다.



《가르치고 싶은 아이 놀고 싶은 아이》에서 오은영 교수는 초등기 때는 부모가 아이를 놓는 연습을 해야 하는 시기라고 강조했다. 


“초등학생이라면 스스로 학교 준비물을 챙기고 알림장을 체크해서 혼자서 가방을 싸서 스스로 해볼 수 있는 경험과 기회를 쌓아가는 시기다. 공부란 책상에 앉아 머리를 싸매고 문제만 푸는 것이 아니라 내 생활 전반에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서도 해결하려는 태도와 경험 역시 공부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초등학교 때의 성적이 고등 입시나 대학 입시까지 연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혼자서 실수도 해보고 실패도 해보고 시행착오를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시기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는 오히려 이 위기에 대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아무래도 엄마의 손길이 부족하겠지만, 그 현실에서 더욱 주도적으로 공부하고 자신 앞에 놓인 과제들을 주체적으로 해결해 나갈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하는 편이 훨씬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내 아이를 믿고 나를 믿기로 했다. 아이들은 결국 혼자서 해내야 한다. 엄마 손으로 해낼 수 있는 건 어쩌면 저학년 때뿐일지도 모른다.



나도 워킹맘의 자식으로 살아오면서 그동안 늘 엄마의 손길이 부족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오히려 엄마의 부족한 손길 덕분에 숙제든, 공부든 뭐든 혼자서 해결해야 했다. 그 경험들이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 뭐든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 내리는 지금의 나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 워킹맘이 꼭 기억해야 할 육아 원칙

인간은 결핍을 메우면서 성장하는 존재다.

엄마가 모든 것을 다 충족해주면

아이는 성장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엄마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줄 수 있는 만큼의 사랑과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엄마가 일하느냐, 아이와 늘 함께 있어 주느냐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주어진 시간에 얼마나 충실한가,

열심히 행복하게 살아가는가가

아이 성장을 이끄는 키워드다.

- 나누리병원 김혜남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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