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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욕심많은워킹맘 Mar 18. 2018

채찍보다 스스로 생각하기가 필요해

초등학생 아이의 잦은 실수에 대처하는 엄마의 자세

어느덧 초등학교 3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가 되었다. 그간 참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났고,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로 허우적거리며 살아왔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라면 엄마도 초등학교 신입생'이라는 말이 있는데, 물개 박수 치며 공감하고 싶을 정도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처음 한 달 동안은 알림장 노트에 선생님이 공지한 내용을 삐뚤빼뚤한 손 글씨로 적어왔다. 이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 알림장을 대신하게 됐다. 

퇴근 후 늦은 시각에 알림장을 확인할 수밖에 없는 맞벌이 부모의 현실을 고려해 도입된 시스템이다. 수업이 끝난 오후 선생님이 알림장 내용을 앱에 업로드하면 스마트폰에서 알림이 울려 곧바로 확인할 수 있다. 수기 알림장은 선생님이 칭찬 스티커를 붙여주는 용도로만 쓰인다.

아이가 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 온 어느 금요일, 수기 알림장에 붙은 칭찬 스티커의 개수를 순서대로 적어오는 숙제가 있었다. 아이에게 '가방에서 알림장을 꺼내 누적 스티커 개수를 세어보라'고 했더니 가방에 알림장이 없.단.다. 

            

내심 당황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에게 "알림장 안 챙겨왔어? 어떻게 할래?"라고 물어도 머뭇거리기만 할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눈치다. 일단 아이에게 다양한 방법을 알려줘야겠다 싶었다. 

  "지금 학교에 가서 가져오는 방법이 있고, 아니면 숙제 안 하고 그냥 가면 된다. 어떻게 할래?"
"학교에 가서 가져올래요."
"지금은 시간이 늦어서 교실 문이 잠겼을 수도 있어. 선생님께 전화해서 교실 문이 열렸는지 여쭤보고 가는 게 나을 것 같다. 네가 해야 하는 일이니까 네가 직접 선생님께 전화해서 여쭤보렴."

그랬더니 군말 없이 키즈폰으로 직접 담임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저 학교 와서(가서) 알림장 가져가도 돼요?"

키즈폰이 스피커폰이라 선생님 목소리가 고스란히 들린다. 처음에 선생님은 큰 아이의 말이 무슨 뜻인 모르는 눈치였다. 

"응? 뭐라고?"

아이가 "알림장 가져와도 돼요? 교실 문 열려 있어요?"라고 재차 물었더니 담임 선생님께서 척! 하고 알아들었다.

"아~ 알림장을 학교에 놔두고 왔구나. 지금 선생님이 출장 와서 교실 문이 잠겨있어. 월요일에 해도 되니까 괜찮아."

공책 때문에 아이에게 화낸 사연

아이에게 학교 갈 때 가방을 스스로 챙겨가게 해두었더니 매번 챙겨야 하는 준비물을 빠뜨리는 실수가 잦았다. 준비물인 가위를 놔두고 가거나 사랑의 우체통(선생님이 가정통신문을 전해주는 봉투)을 깜빡하고 가거나... 그럴 때 '이제 1학년인데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했다. 한 번은 '가위를 안 가져가서 어떻게 했냐'고 물어봤더니 친구들에게 빌려서 활동했다고 한다.

"친구들에게 빌려서 사용할 때 기분이 어땠어?"
"친구들에게 미안했어요." 

다음부터는 준비물을 잘 챙겨서 다니라고 조언했다. 

며칠 전 일이다. 매주 화요일은 반에서 받아쓰기하는 날이다. 받아쓰기 한 날에는 학부모의 사인을 받은 다음 틀린 문제를 5번씩 써오는 숙제가 있다. 학교에서 마치고 온 큰 아이는 꼬깃꼬깃 접힌 종이 한 장을 내게 펼쳐 보이며 "엄마, 학교에 받아쓰기 공책이 없었어요. 그래서 선생님이 주신 종이에다 받아쓰기 했어요"라고 말했다.

학교에 당연히 있어야 할 받아쓰기 공책이 없다니. 받아쓰기 공책에 아이가 준 종이를 붙여야 하는 것 또한 숙제인데, 집 안 구석구석을 찾아도 받아쓰기 공책은 없었다. 그래서 결국 다음 날 아이에게 '학교에 있을지 모르니 찾아보라'고 당부하고 나는 나대로 집안 온 구석을 다 뒤져봤다. 허탈하게도 없었다. 

학교에 마치고 온 아이에게 집에 아무리 찾아도 공책이 없다고 했더니 그동안 봐왔던 노란색 받아쓰기 공책을 떡하니 내미는 게 아닌가? 일단 찾았다는 반가움에 어디서 났냐고 물었더니 "책상 서랍에 있었어요"라고 답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이 공책을 찾느라 고생한 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면서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 사실 그동안 아이가 저지른 크고 작은 실수가 보태져서 더 큰 화가 났는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책상 서랍을 찾아보지도 않고 없다고 덜렁 내뱉어? 엄마가 어제, 오늘 이 공책을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 너 책상 서랍 정리 안 했지? 정리를 안 해놓으니까 찾아도 안 보이는 거잖아! 너의 실수로 왜 엄마까지 고생시켜!"

'왜'가 아닌 '어떻게'... 아이에게 필요한 물음

            

▲  매일 챙겨야 할 준비물을 스스로 써보기 



혼난 아이의 표정을 보니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내가 한 행동은 아이를 위한 조언이나 충고가 아니라 아이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공책을 찾느라 허비한 내 신경과 시간에 대한 원망과 분노만 담긴 말뿐이었다.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등교할 때는 집에 빠트리고 가고 하교할 때는 학교에 놔두고 오는 준비물들을 접착 메모지에 아이 스스로 적어보라고 했다. 매일 가방 속에 있어야 할 준비물이 무엇인지 나는 아무 말도 내뱉지 않고 아이 스스로 처음부터 끝까지 생각해보도록 했다.

그러자 하나둘씩 적기 시작한다. 연필 3자루, 지우개, 딱풀, 가위, 알림장, 그리고 엄마인 나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아침 독서 책까지. 그런데 하나가 빠져있었다. 지금 네 책가방을 한번 살펴보고 뭐가 빠졌는지 생각해보라고 했더니 "아!"라는 탄성과 함께 '사랑의 우체통'이라고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침에 아이가 직접 적은 준비물을 순서대로 차근차근 챙겨보라고 했다.

어제는 학교 마치고 오더니 "엄마! 나 물통을 빠트렸더라고요! 학교에서 챙겨 와야 할 준비물에 물통도 적었어요!"라며 씩씩하게 말한다. 처음부터 실수에 대한 원망이 담긴 말보다 실수를 통해 배워야 할 방법을 알려줬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이번 일로 나도 아이도 조금 더 성장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어른인 나도 스마트폰을 아무 데나 두고 온 적이 있었고, 병원에 가서 계산할 때 지갑이 없어서 외상을 하고 온 적도 있었다. 나도 덜렁거리고 실수하면서 이제 고작 여덟 살인 아이에게 완벽을 요구했던 건 아니었을까. 

아이의 실수 앞에서 우리가 가르쳐줘야 하는 건 '왜'라는 훈계가 아니라 '어떻게'임을 깨닫는다. 우리도 분명히 지금 이 시기에 크고 작은 실수를 겪으면서 성장했을 터. 자라나는 시기의 당연한 실수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만 방법을 모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 것일 뿐. 우리 아이들은 내가 가르치고 내가 하는 방식대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부모라면 내 아이의 실수를 품어주고 '왜'가 아니라 '어떻게'라고 질문해야 함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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