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참 많은 부분이 닮았다. 처음 만났을 때 나와 비슷한 점이 너무 많아 '이 사람 나에게 너무 맞추려고 든다'고 느낄 정도였다. 그중 하나가 젊은이들이 넘쳐 다니는 대학가 주위를 다니는 걸 무척이나 즐긴다는 점이다. 주위 사람들은 무슨 재미로 가냐고들 묻지만 많은 사람이 북적거리고 젊은이들이 활개 치는 공간에 있으면 청춘의 에너지가 스며든다.
젊음의 거리를 누비러 간 어느 날, 잠시 더위도 식힐 겸 아이들과 함께 커피숍으로 향했다. 아이들이 마실 달콤한 과일 셰이크와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사이, 주위를 둘러본다. 사람들은 구경하는 것도 커피숍의 묘미다.
▲ 과거의 나는 커피숍에 가면 자연스럽게 젊은 청춘 남녀들을 바라보았다. 알콩달콩한 연인들을 보노라면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다'는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 컸기 때문일까? ⓒ unsplash
과거의 나는 커피숍에 가면 자연스럽게 젊은 청춘 남녀들을 바라보았다. 알콩달콩한 연인들을 보노라면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다'는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 컸기 때문일까? 파릇파릇 새싹이 돋는 느낌이 드는 20대 청춘 남녀들이 부러웠다. 스물네 살에 결혼해 그 꽃다운 청춘을 너무나도 빨리 잃었다는 상실감은 늘 미련으로, 후회로 남아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피부가 탱탱했고, 꾸미는 것도 자유로웠을 것이다. 나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고 있었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스물네 살, 한창 이뻐야 할 시기에 이른 결혼으로 맏며느리, 아내, 올케라는 무거운 책임감을 짊어져 내 인생의 꽃은 너무나도 빨리 시들었다고 생각했다. 한창 깨가 쏟아져야 할 신혼에 시댁에서 살았기 때문에 마치 모든 것이 그대로인 집에 새로 들어온 낯선 가구 같은 느낌이었다. 일 년 만에 분가 후 새 신혼을 꿈꿨지만, 분가 3개월 후에 출산했다. 그때 내 나이가 스물여섯, 처음 해보는 엄마 역할을 해내느라 나를 잊고 살았던 이십 대 청춘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서 아이를 낳아 그저 엄마 역할을 해내느라 힘겹기만 했던 나의 이십 대 청춘이었다. 너무 일찍 시들어버린 이십 대 청춘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시작하는 연인들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아른했다.
지금의 나는 초롱초롱한 선망의 눈빛으로 중년 여성을 바라본다. 세련되고 품격 있어 보이는 분위기를 지닌 여성들을 보면 '어떻게 하면 저렇게 우아한 이미지를 가질 수 있을까?' '내가 중년이 되었을 때는 어떤 모습일까?' '그때 나는 무얼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10년 후, 20년 후의 내 삶이 궁금해서 무한 상상을 펼쳐본다.
과거에는 10년 전을 그리워했다면, 지금은 10년 후를 상상하는 여자가 되었다. 미래가 기대되고 10년 후가 기다려지는 내가 되기 위해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이다. 과거처럼 10년 전을 그리워하고 후회하며 사는 나보다, 현재에 충실한 삶의 태도로 10년 후를 그리는 나로 살아가고 싶다. 이것을 '지금부터 시작하는 나만의 노후 준비'라고 표현하고 싶다.
"젊을 때부터 혼자 노는 방법을 찾아야 해"
30대인 지금 이 시기에 내가 하는 특별한 노후 준비는 닮고 싶은 롤모델 선배를 곁에 많이 두는 것이다. 소싯적인 과거를 복기하며 사는 사람이 아니라, 앞으로의 미래를 꿈꾸며 현실을 충실히 사는 여자가 되고 싶다.
과거에는 좋은 차를 끌고 고급 아파트에 거주하는 여자들이 참 부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중년이 되어서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선배 엄마들이 부럽다. 자식들이 부모의 손길에서 벗어나는 시기에 외로워하지 않고 제2의 황금기 인생을 맞이하는 그들이 멋있다.
글이 쓰고 싶어 중년에 수필가로 새로운 인생을 연 <엄마의 주례사> 저자 김재용 작가, 두 딸을 키우며 청소년 강사로서 여전히 꿈을 향해 고공행진 중인 <괜찮아, 꿈이 있으면 길을 잃지 않아> 저자 백수연 작가, 두 남매를 키우면서 열심히 하루하루 충실히 사는 블로그 이웃 서문원 강사 등 하루하루를 충실히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공통점은 가정에서 엄마와 아내라는 역할뿐만 아니라 '나'를 잊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다. 닮고 싶은 사람들을 하나둘 늘려가는 것이 미래를 위한 보험이고 현재를 위한 투자이기도 하다.
자신만의 일을 하는 그들을 보면서 내가 선택한 워킹맘의 삶이 얼마나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지 새삼 깨닫고 있다. '일하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보다는 일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더 열정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건강한 책임감으로 하루하루를 맞이하는 삶. 미래의 나에게 대견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육아, 살림, 일까지 하는 여자의 인생을 고단하게 살아가기보다는, 내가 선택을 했든, 아니든 이왕이면 워킹맘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과거에는 늘 시간에 쫓기듯 바쁘게 살아왔다고 자부했다. 그 바쁨이 삶의 열정이고 활력소였다. 하지만 결혼해 타지로 옮겨와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 나는 속내를 터놓을 친구도 없고, 어딜 나설 곳도 딱히 없는 낯선 환경에서 지독한 고독함을 느꼈다. 하루 24시간이 무섭다고 느낄 만큼 많은 시간 앞에서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어쩌면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했기에 더욱 자신을 더욱 외롭다고 가두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야 두 아들을 키우는 엄마 역할에, 아내 역할에, 워킹맘 김 대리 역할에 많은 책임이 따르지만, 세월이 흐르면 '오직 나'만 생각해야 하는 시기가 온다.
보험 영업직을 하는 친정어머니 친구분은 늘 세련미가 넘치신다. 혼자서 뭐든 배우러 다니신다. 문화 강좌든, 도서관 강의든 혼자서 뭐든 배우러 다니시는 모습이 참 우아하게 보였다. 그분은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맞벌이하면서 아들 둘 키우느라 힘들지? 그래도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고 지금 이때쯤 되면 오히려 그때가 그리워져. 지금 주위 친구들 보면 자식들 다 키우고도 외로워서 가족에게 집착하고 그러면서 또 실망하고의 반복이더라. 노후 준비는 별것 아니야. 젊을 때부터 혼자 노는 방법을 찾아야 해. 그래야 남에게 기대지 않고 혼자 만들어가는 행복을 느끼는 거야."
홀로 채우는 시간의 힘
▲ 나를 사랑하고 나를 위하는 시간은 오직 나만이 만들어 줄 수 있다. 진정한 위로는 나만이 해줄 수 있다. ⓒ unsplash
나의 다이어리에는 혼자서 해보고 싶은 일 리스트가 있다.
1. 혼자서 7080 콘서트 다녀오기
2. 혼자서 대형서점 다녀오기
3. 혼자서 식사하기
4. 혼자서 영화 관람하기
5. 혼자서 1박 2일 여행 다녀오기
6. 혼자서 해외여행 다녀오기
7. 혼자 집에서 뒹굴뒹굴하기
이 중 몇 개는 실행했고 나머지는 아직 미실행 단계다. 과거에는 혼자서 뭘 해보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혼자서는 처량하게 뭘 한다고'라는 고정관념이 강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혼자서 경험하는 일들이 하나둘씩 쌓이면서 안될 거라는 부정적인 사고방식에서도 많이 벗어났다. 뭐든 도전부터 하고 보자는 마인드로 변했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을까 궁리까지 한다. 업무 중 장거리 외근 나갈 일이 있으면 혼자서 음악 들으며 운전하는 시간이 힐링 시간이라고 할 정도로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긴다. 혼자 있지 못해서 외로웠던 내가 이제는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면서 외로움이라는 단어는 잊고 산다.
사실, 살면서 가장 깊은 외로움을 느끼는 날이 있다면 남편과 다툰 날이다. 스물넷에 줄곧 자라온 대구를 떠나 남편 하나 믿고 시댁으로 들어왔는데, 그런 남편이 내 마음을 몰라줄 때는 그렇게도 야속할 수가 없다. 그럴 때면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에 이웃 엄마들을 만나 '폭풍 수다'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서 한두 시간 외출할 채비를 하고 나선다. 혼자서 맥주도 마시고, 혼자 커피숍에서 책을 읽기도 한다. 그러면서 속상하고 서운한 내 마음을 내가 위로해준다. 과거에는 남편이 내 마음을 몰라준다는 서운함이 곧 외로움으로 이어졌는데, 이제는 혼자 있을 수 있게 되자 남편 입장을 조금씩 이해하는 나로 변해간다. 그렇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텅 비었던 마음도 채워져 간다.
지금 내가 하는 특별한 노후 준비는 닮고 싶은 중년 롤모델을 곁에 많이 두는 것, 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여자가 되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고 나를 위하는 시간은 오직 나만이 만들어 줄 수 있다. 진정한 위로는 나만이 해줄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혼자서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둘씩 적어보자.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돌아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내가 주체가 되어 만드는 행복이 무엇인지 느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