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습니다. 내 삶이 구닥다리는 아니니까요.

돈을 아끼는게 아니라, 내 삶을 아끼는 중입니다.

by 욕심많은워킹맘

괜찮습니다.
내 삶이 구닥다리는 아니니까요.

얼마 전, 대구서 친정 엄마가 오셔서 하룻밤 지내고 가셨다. 잘 도착하셨나 싶어 전화를 했더니 엄마가 예상치도 못한 말씀을 하셨다.






영아, 엄마 다음 달에
곗돈 타는데
너희 집에 TV 한대 바꿔라.
그 돈 보태서 좋은 걸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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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형님이 준 TV! 이제는 10년이 훌쩍 넘은 TV, 아들 둘의 솜씨로 화면이 깨지기 시작하다.






엄마 마음에 우리 집 거실 TV가 편하지 않았나 보다. 결혼한 지 12년이 되도록, 여전히 작고 화면조차 조금씩 깨지기 시작한 저 TV를 바꾸지 않고 사는 게 엄마 마음이 불편하셨던 게다.

스물네 살이던 큰 딸이 결혼할 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시집보낸 게 늘 마음이 아프다던 엄마였다. 그래서 큰 딸이 조금이라도 궁핍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면 그게 마치 엄마 탓으로 여기기도 하셨다. 이 TV 역시 내 돈 주고 구입한 게 아니었다. 둘째 형님이 우리들 신혼집 마련할 때 주신 TV였다.

그러고 보니 저 TV는 여전히 우리 집을 방문한 손님에게서 핀잔을 많이 받는 식구나 다름없다. 없이 시작한 결혼이었기에 시댁 방 한 칸에서 신혼 생활 시작 후, 첫 신혼집에 5년간 살다 지금 아파트로 입주했다. 15년 된 아파트에 살다 새 아파트에 입주했기에 설렘과 뿌듯함은 이루어 말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새 아파트 입주 후, 가장 먼저 인터넷 이전 설치 요청을 했다. 방문한 인터넷 설치 기사님이 호탕한 웃음을 지으시며 한 마디를 하셨다.







허허허.
TV가 너무 작은 거 아닙니까?
보통 TV 정도는
새 아파트 입주하면서 하나씩은
다들 바꾸시던데.......







돌이켜 보면 정말 우리 집에 온 사람들마다 다들 TV 보고 한마디씩은 했다. 명색이 새 아파트에 입주했는데 TV는 남들도 보는데 좀 바꾸지 그러냐고 말이다. 그래도 나는 불편함이 없어 아주 만족하며 산다. 아들 둘 키우는 집안이라 좋은 가전제품의 필요성을 딱히 모르겠다. 저 TV를 보는 사이 아들 둘이나 태어났고,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의 괴롭힘의 훈장으로 화면도 조금씩 깨졌다. 그만큼의 우리의 세월도 함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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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 친구들의 집들이 선물 10년 넘은 청소기






워낙 일찍 결혼한 우리 부부이기에 친구들 사이에서 우리들의 결혼 생활은 호기심 대상이었다. 그래서 우리들의 사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지만, 시댁에 살 때 집들이는 언감생심이다. 일 년 만에 내 집 마련을 하면서 비용을 조금이라도 아끼고자 셀프 인테리어를 했다. 15년 된 아파트였기에 손 볼 곳이 아주 많았다. 그때 신랑 친구들이 직접 방문 페인트칠을 도와주기도 했다. 한 번씩 술자리를 하면 그때를 추억 삼아 꺼내곤 한다.

어디 그뿐인가. 결혼 생활은 1년이지만, 시댁 방 한 칸에서 시작한 신혼이기에 분가하던 날 이삿짐이 딱히 없었다. 방 한 칸에 있는 살림이 이삿짐 전부였다. 이사하던 날, 용달차 한 대만 불러 신랑 친구들과 함께 이삿짐을 날랐다. 그런 신랑 친구들이 결혼 일 년 만에 내 집에서 집들이하던 날 사준 청소기다.

스팀 기능도 되는 청소기라 아주 만족하며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도 10년이라는 세월을 비켜갈 수 없었다. 먼지를 흡입하는 입구 롤러가 고장이 나서 서비스 센터를 방문했다. 이 녀석을 보자마자 아주 오래된 제품이라며 이건 부품도 없다는 거다. 웬만하면 하나 새로 사시라며 웃으셨다. '고장 난 거라곤 입구 부분뿐인데 ...' 내심 아까웠다. 그리고 알겠다고 돌아서려던 찰나, 남자분이 다른 분이 고장 나서 못 고치고 폐기 처분하려던 청소기가 있는데 우리 집 청소기와 호환이 될 거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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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두 녀석들 합체












그리하여 새것처럼 말짱해진 청소기로 재탄생했다. 입구 쪽 부분 모델은 [뉴 회전 싹싹]이지만, 청소기 몸통 모델은 [스팀 CYKING]이다. 버려질뻔한 입구 부분이 우리 집 청소기 몸통과 합체되었다. 녀석들 모델명은 다르지만, 기능은 완벽한 조화의 걸작이다. 무엇보다 0원에 청소기가 재탄생되었다.

서비스센터를 나설 때 우리를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서비스센터 직원의 미소도 상관없었다. 그저 0원에 청소기가 말짱하게 재탄생되었으니 얼마나 기쁜가?
그 후로도 아주아주 잘 쓰고 있는 청소기다. 요즘 '다이슨이다', '그보다 저렴한 차이슨이다'하며 각기 각색의 다양한 전자제품이 출시되고 있지만 나는 그래도 우리들의 세월만큼 함께 하는 추억 가득한 이 청소기가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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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넘은 밥솥, 동생이 회사 체육 대회에서 받은 경품






결혼 후 12년 가까운 세월 동안 우리 집식구들의 든든한 한 끼 밥상에 지대한 역할을 하는 밥솥이다. 내가 실수로 내솥을 떨어트려 손잡이가 깨져서 교체한 거 말고는 아주 잘 움직이는 밥솥이다. 이 밥솥 역시 결혼 후 일 년 만에 분가하던 시점에 동생이 회사 체육대회에서 경품으로 받아온 밥솥이었다. 동생이 언니 내 집 마련 선물로 줄 수 있겠다며 기뻐했다.
요즘은 세련된 디자인으로 나오고 작고 가벼운 밥솥도 많이 나왔지만, 나는 여전히 이 밥솥에 정도 많이 가고, 힘들게 분가하던 그때의 마음이 떠올라 애정 어린 가전제품 중에 하나다. 하나뿐인 동생이 워낙 없이 결혼 생활을 시작한 언니가 내 집 마련해서 분가할 때 딱 맞춰서 경품에 당첨된 게 너무 기쁘다던 동생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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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들처럼 결혼하면서 가전제품 매장에 들러 신혼살림을 시작한다는 경험을 해보지 못했다. 그저 인터넷 최저가 검색 후 제일 작고 저렴한 제품을 찾는 게 우선이었다. 그러면서 발견한 냉장고,
그때 당시 레드 색상의 가전제품이 유행이었는데 나는 오래 써도 싫증 나지 않는 화이트로 구입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잘한 것 같다. 그런데 이 냉장고를 결제한지 한 달 만에 겨우 배송받을 수 있었다. 즉, 분가 후 한 달 동안은 냉장고 없이 생활했다는 이야기다. 가전제품 매장에서 샀다면 바로 받을 수 있었지만 인터넷으로 구입했더니 배송 일자도 우리가 맞춰야만 했다.

그런데 한 달 만에 배송받길 잘했다 싶은 이유가 있다.
배송 설치 기사분이 한 달 원래 냉장고 램프 색상이 주황색이었는데 한 달 사이 백색으로 바뀌었다는 거다. 그렇게 냉장고 없이 한 달 산 덕분에 백색 램프가 달린 최신 냉장고로 배송받을 수 있었다. 고장 한 번 없이 아주 잘 가동되는 우리 집 냉장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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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아파트에 입주하고 또 5년의 세월이 흘렀다. 주위 이웃집 엄마들 보면 새 아파트 입주하면서 이층침대며, 가구며, 가전제품을 마치 두 번째 신혼살림을 차리는 것처럼 최신 제품으로 탈바꿈했다. 아이들도 같은 나이이니, 결혼도 다들 비슷한 시기에 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정말 시댁 방 한 칸에서 시작할 때 가구들이 12년째 함께 하고 있다. 화장대도 물론 침대도 말이다. 신랑보다 한해 일찍 결혼한 선배의 충고대로 당시 화장대는 좋은 걸로 구입했지만, 세월에 벗겨지고 있다. 우리 남편이 더 벗겨지지 마라며 투명 테이프로 단단히 고정시켜 놓았다.






어지간하다던 눈빛이 아닌
대단하다는 마음으로
느껴지던 순간







나는 이게 삶이었고, 내 소중한 추억들이었다. 남들 보기에는 어지간하다 할지 몰라도, 사는데 불편함이 없기에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청울림님 강연에서 와이프가 쓰던 냉장고 사진을 보여주시며 지금도 쓰고 계신다는 글에 무릎을 쳤다. 또 얼마 전에 읽은 《아들 셋 엄마의 돈 되는 독서》에서도 오랜 세월 동안 한 밥솥을 쓰고 계신다는 글에 너무 좋았다. 남들이 나를 어지간하다 바라볼 때, 그들의 이야기에서 내심 나 스스로가 대단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내 삶의 훈장과 다름없는 가전제품들, 앞으로 우리들의 역사도 다시 새롭게 쓰려고 한다. 내가 대단히 여기는 그들처럼 말이다! 초심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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