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 가족 소설
< 우리 처음 만난 날 >
첫째 아이 때도 그랬고 둘째 아이 때도 그랬고 나는 아내의 출산을 곁에서 지켜주지 못했다.
첫째 아이 때는 가족 분만이라는 것을 하다가 아내보다 내가 더 비명을 질러대는 바람에 밖으로 쫓겨났고,
둘째 아이 때는 누군가를 잠깐 만나고 돌아온다는 게 그만 퇴근길 정체에 걸려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그래서 셋째 아이는 꼭 옆에서 손도 잡아주고 탯줄도 내 손으로 잘라주겠노라 아내 앞에서 몇 번 가슴을
팡팡 쳐대며 약속했던 처지였다.
그러니 그 약속을 위해서라도 올라가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내가 터미널로 향하는 택시를 잡기도 전에 아내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어디야?
"어, 막 택시 잡으려고, 괜찮아?"
"택시는 무슨, 소설 다 썼어?"
아내는 대뜸 소설부터 물어왔다. 아내는 몇 달 전부터 지금 쓰고 있는 소설 때문에 내가 얼마나
끙끙거렸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지금 소설이 문젠가?
...
"올라와도 도움이 안 되니까 소설이나 얌전히 써. 애 한두 번 낳는 것도 아니고, 왜 이래 아마추어처럼."
나는 전화를 끊으면서 "뭐, 이런 여자가 다 있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한편 어느새 작가의 아내가 다 되어버린 한 여자를 떠올렸다. 나는 잠깐 차도 앞에서 망설이다가
다시 작업실로 들어가고 말았다.
결국 그날 밤 나는 작업실에 앉아 잡지사에 보낼 소설을 어찌어찌 다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각 아내는 우리 가족의 첫 딸을 낳았다.
...
"어, 왔네?"
아내가 잠에서 깨어나 말을 걸었다.
"왜 거짓말을 하고 그러냐? 그깟 소설이 다 뭐라고."
나는 짐짓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아내가 몸을 조금 일으키며 말했다.
"다 썼어?"
"그래, 다 썼다. 이제 됐냐?"
그제야 아내는 딸아이 쪽으로 눈길을 돌리며 웃었다.
"봐봐, 우리 딸이야. 너무 예쁘지?"
나는 아내의 눈길을 좇아 딸아이를 바라보았다. 딸아이는 아주 작고 머리숱이 많았다.
내가 난생처음 딸을 만난 순간이었다. 나는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가슴이 뛰었다.
10년 연재를 기한으로 월간지에 연재한 내용을 엮은 책이라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연재가 중단된 점이 아쉬움. 직장인이자 소설가인 주인공과 육아맘이자 내유외강의 아내, 눈에 넣어도 안아플 세 아이까지 다섯식구의 소소한 일상이 줄거리다. 주인공 '나'는 이러한 일상 속 일들을 통해 아내와 아이에게로부터 배우고 성장해가는 평범한 남편이자 아빠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꽤 뿌듯하고 때론 감동적이었다. 책 중간중간 삽입되어있는 삽화까지 아름다운... 평범하지만 울림있는, 좋은 책인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