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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이 Oct 25. 2017

어디로 가는 걸까

갈 길은 아직 머니까

 나는 무작정 바다를 향해 떠나기로 했다. 주택가를 벗어나니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모든 것이 위험하게 느껴졌다. 도로에는 시커먼 매연을 내뿜고, 시끄러운 경적을 울려대는 차들이 가득했다.   

    

 여유 없이 늘 무표정에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사람들. 나를 보면 고함을 질러대는 이상한 사람들도 있었다. 가끔 어린아이들이 귀엽다며, 내게 먹을 것을 가지고 다가오기도 했다. 그들이 주는 음식으로 허겁지겁 배를 채워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운이 좋은 날은 거의 없다.      


 “혹시 바다로 가는 길을 아세요?”     


 “배고프고, 날도 더운데 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하는 거야!”          


 그러나 도대체 어디로 가야 바다를 만나는 걸까. 길에서 만난 나와 같은 떠돌이 고양이들에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어보자 답을 얻기는커녕 얻어맞는 일상의 반복이 되었다. 이제는 섣부르게 길을 묻는 일도 두려워진다.    

 살던 주택가로 돌아가는 길은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나는 또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음식인 줄 알고 쓰레기를 뒤지면 그 안에 오물이 함께 들어있는 경우가 많아 먹을 수 없는 것이 더 많았다.


 어느 날 길냥이들을 위해 사람들이 놓아둔 간식이 있다는 곳의 이야기를 귀동냥한 나는 허기를 채우기 위해 그곳으로 향했다. 과연 잘 닦여진 그릇에는 생선과 사료가 놓여있다.      


 ‘치우지 마세요. 길냥이들도 소중한 생명입니다. 제가 치우겠습니다.’      


 마음씨 좋은 사람이 붙여놓은 쪽지도 붙어 있다. 드디어 배를 채울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릇에 다가가려고 하자한 사람이 심통 맞은 표정으로 툴툴거리며 그곳에 다가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런 게 있으니 이놈의 성가신 고양이 새끼들이 죽지 않고 계속 생기지."          


 몸을 숨기고 몰래 지켜보니, 그는 들고 온 정체불명의 액체를 그릇에 쏟고 있었다. 사람이 떠나고 그릇에 다가가 냄새를 맡아보니, 처음 맡아보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먹었다간 죽었겠구나 싶었다. 쥐약인 듯했다. 이럴 때를 대비해 어머니는 주택가에 길냥이를 쫓기 위해 놓아둔 쥐약의 냄새를 꼭 기억하라고 하셨구나.       


 혹시나 다른 고양이들이 먹을까 그릇을 엎어 생선과 사료들을 흙속에 파묻어 버렸다. 왜 사람들은 이렇게 우리를 괴롭히는 걸까. 잘 알고 있는 길냥이의 삶이지만 모든 것을 혼자 버텨내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플 뿐.


 다시 일주일이 지나고 있다. 먼지뿐인 뿌연 하늘과 탁한 공기에 숨이 막혀 잠시 숨을 돌려야겠다는 생각이 든 나는 한 아파트 단지로 들어갔다. 내가 살던 곳과는 달리 아주 깨끗하게 정돈된 이곳. 아쉽게도 내가 먹을 만한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길냥이들 먹으라고 둔 음식인가 보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담장 밑 수풀 사이로 작은 스티로폼 박스를 발견했다. 옆에는 사람들이 두고 간 것인지 조그마한 우유 접시가 놓여있다. 나는 쾌재를 부르며 박스를 향해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박스로 다가가면 갈수록 처음 맡아보는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찌른다. ‘도대체 이게 무슨 냄새지?’ 박스 안을 들여다보니, 이제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된 작은 새끼 몇 마리가 죽어있다.      


 이렇게 얼마나 방치된 걸까. 오랫동안 굶주려 가죽밖에 남아있지 않은 처참한 몰골이다. 보송보송해야 할 털들은 금방이라도 바람에 날릴 듯 푸석거렸고, 입에는 거품이 메마른 자국이 선명했다.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나는 놀라 눈물이 터져 나왔다. 이 고양이들은 그저 굶주린 것일까. 아니면 사람들이 유인하여 죽인 것일까. 


"이게 무슨 소리지?" 


 나의 울음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다가왔다. 순간, 공포가 밀려왔다. 죽은 새끼들을 수습해줄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나는 두려움에 도망쳤다.  그런데 어쩐지 저 멀리서 이곳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 장면을 지켜보는 담담한 표정의 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 아마도 이 새끼들의 어미인 것 같다. 미동도 없는 채로 어미 고양이는 박스를 들고 가는 사람들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왜 자신의 새끼들을 이렇게 죽도록 내버려둔 것일까. 문득 오랜 시간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헌신적으로 우리 남매를 돌보던 어머니가 떠올랐다. 


'우리 어머니는 정말 대단하신 분이었어.'


 죽은 새끼들과 그들을 바라보던 무력한 어미 고양이. 그들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아마 한동안 이 일은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길을 다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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