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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즐건 Apr 04. 2022

간이 프리랜서의 삶

정식은 아니고 간이, 그리고 아직은 아닌가 봐

퇴사한 지 어느덧 6개월이 되어간다. 시간 참 빨라. 처음 3개월은 아주 아주 신나게 놀았다. 많이 보고 먹고 즐기고 만나고. 어느 날 누워있는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 "이제 여한이 없을 만큼 놀았어" 

물론 일상적이지 않은 때라 해외여행을 못 간 게 아쉽긴 하다. 연 말에 갈 기회가 있긴 했다. 하필 그때 오미크론이 발발하고 확산세가 심상치 않아서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리스크를 지고 갈 만큼 가고 싶진 않았고, 통장이 비어감이 훅훅 느껴지면서 나름의 불안감을 갖기도 했다. 그 심정으로 나갔더라도 돈 걱정에 즐기지도 못했을 것 같다. 혼자 가는 것도 아니니 매 번 돈 없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잘한 결정이었다.


슬금슬금 할 일을 모색했다. 취업도 준비해야 하는데~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행동하진 않았다. 약간의 움직임이라면 채용 사이트를 적극적으로 찾아봤다는 정도? 채용 정보를 나누기 시작했다는 정도? 나름 사회 짬밥이 있어서 채용 공고를 봐도 진실되어 보이진 않았다. 즉, 쟤고 따지는 게 많아진 거지. 


기업의 평판을 더 면밀히 알아보게 되고, 겉으로 좋아보기는 걸 찾기보다 정말 일하기 좋은 곳인가, 성장성이 있는 곳인가, 나랑 잘 맞는 곳인가를 보게 되더라. 종종 지인들이 어디 공고 떴다며 링크를 주기도 했지만 심드렁한 게 훨씬 많았다. 일할 마음이 아직 들진 않았던 것이다. 통장 잔고를 보면 그럴 때가 아니었는데.


감사히도 예전에 같이 일한 파트너사 대표님이 간단하게(?)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겠냐고 제안을 주셨다. 연말이었나 연초에 만났을 때 예정인 프로젝트 이야길 나눴고, 같이 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흔히 말하면 프리랜서 같은 것이지.


프리랜서로 전향하는 걸 고민하기도 했다. 문제는 어떻게 시작하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인하우스 마케터로 오래 일을 해서 프리랜서의 생리는 전혀 알지 못했다.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 친구들이 있지만, 그들이 어떻게 일을 계약하는지, 단가는 어떻게 책정하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 공개된 자료들을 보면 대부분 일단 어떤 분야에서 네임드가 되어서 독립한 케이스들이 종종 있었고, 그게 아닌 사람들은 어디서 활동하는지 알 수 없었다. 대부분은 회사 재직 중에 기반을 닦고 나오곤 하지만 난 그러지 못했다.


어쨌건, 첫 번째 프리랜서의 일을 남들보다 쉽게 얻었다. 대표님께서 나를 오래 봐왔기 때문에 가능했고, 나름 일이나 태도, 사고방식에 쿵작이 맞는 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리브랜딩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됐다.


프로젝트는 클라이언트와의 정기 미팅, 팀 미팅으로 진행됐다. 스터디와 워크숍을 통해 방향성을 잡아나가며 큰 틀을 짰다. 일주일에 두 번은 만나다가 어느 주부턴 1회씩 혹은 격주로 만나기 시작했다. 


업무의 양은 사실 모르겠다. 산출물을 매일 뽑아내는 게 아니라 기획을 하고 설득 근거를 찾고, 그에 맞춰 산출물을 내는 방식이니 실제 뽑아내는 시간보다 구상하는 시간이 훨씬 많이 들었다. 애석하게도 머리 쓰는 시간과 결과물은 항상 비례하지 않는다. 분명 10시간 고민했는데 한 줄도 안 나올 때도 있고, 툭툭 쉽게 나오기도 하고. 쉬는 동안에도 머리는 굴러가서 스트레스 강도는 조금 있는 것 같다.


어려운 점은 관점을 바꾸는 것과 즉각적인 피드백이 없다는 사실이다.

오랜 시간을 인하우스 마케터로 있었다 보니 어떤 지점에선 '왜 이걸 이렇게 하지?' 생각될 때도 있었다. 물론 이건 나의 오만함 또는 삐딱한 태도일 수 있다. 어쩌면 생각하는 문제가 다른 걸지도 모르고.


나는 실무자의 시선을 좀 더 갖고 있었고 에이전시는 달랐다. 적당한 설명일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이해하는 에이전시 역할은 산재되어 있는 것들을 잘 모아 추리고, 입을만한 옷으로 재 조합을 해주는 역할인 것 같고, 인하우스 마케터는 그보단 입고 있는 걸 어떻게 고칠까? 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즉, 내부자는 시선이 고정되어 있을 경우가 많다 보니 하나밖에 못 보고, 외부자는 더 많은 것을 보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보는 나가 다르듯 말이다. 그런 면에선 적당한 시기에 외부 컨설팅을 받아보는 건 운영자 입장에선 필요한 일인 것 같다. 내부에서 해내면 더욱 좋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즉각적인 피드백이 없다는 점은 생각보다 답답했다. 어쩌면 회사생활 대부분을 보고 하고 피드백받는 생활을 해와서 그런 것 같다. 써 보낸 많은 글은 대부분 피드백이 없었다. 모여서 회의하는 날은 그래도 괜찮았지만, 파일만 보낸 날은 불안했다. 항상 메일 끝자락엔 '확인해 주시고 피드백 주세요'를 남겼지만 대부분 회신이 없었다. 물론 정말 구린 날엔 좀 더 없냐는 연락이 오긴 했지...


그간 나는 디자이너와 딱 붙어서 일을 했었다. 원하는 시안이 확실했을 땐 디테일한 레이아웃을 짜서 제안하기도 하고, 같이 시안을 보며 일하며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내 기획이, 카피가 어떻게 얹히는지 혹은 아이디어가 어떤지, 무엇이 좋은지 논의하고, 상사에게 보고하고 이 과정이 너무 익숙했던 것이다. 결과물에 대한 인정을 받고 싶었던 마음이 컸고, 내 산출물에 의심이 들어서 더 그랬다. 확인해보고 연락드리겠다는 팀장님이 아무 의견을 주지 않았을 땐 찝찝한 마음이 오래갔었다. 그러다 친구 한 명은 "좋으니까 수정사항이 없는 거지"라고 말해주면서 그 뒤론 "별 거 없나 봐~"라는 멘털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지금 하는 일을 통해 알게 된 것 중 하나가 '나는 피드백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거다. 인정 욕구가 큰 것일 수도 있고, 팀 원들과 같이 만들어 나간다는 그 감각을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다른 프리랜서 친구는 듣더니 "조직생활에 적합한 사람"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그는 조직생활이 싫어서 직업을 바꿔버렸고 지금은 프리랜서, 1인 자영업자의 삶을 산다.


일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오래된 조직은 아니었지만 사회생활을 나보다 더 오래 한 사람들 사이에 있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 새로운 걸 제안해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대부분 하지 말자는 이야기는 그거 해서 뭐해, 일 좀 그만 만들어와 같은 감정적인 거부였다. 안 해도 월급은 나오고, 매출은 어째 저째 나오고. 현상 유지는 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걸 깨부술 만큼의 힘이 있는 나도 아녔고. 퇴사 사유에 이런 이유도 있었으니까.


지금 일하는 팀원분들은 일이긴 하나 그래도 애정이 남다른 게 느껴진다. 정말 이게 최선일까?를 늘 고민한다.  식상한 단어지만 진정성이랄까. 물론 스트레스받아하는 모습도 많이 봤다. 그때마다 '부정적 단어로 사고를 막으면 안 된다'는 말로 중심을 잡는데서 마음의 울림을 받았다.  


아직 프로젝트는 끝나지 않았다. 어서 마무리를 해야 하는데, 무릇 일이란 밀리는 법이지. 곧 끝나는데 즐겁게 티타임 하며 안녕을 고해야지. 나는 아직은 팀으로 일하고 싶고, 무언가 키워내는 게 더 적성에 맞는 것 같다. 언젠가는 프리랜서로 활동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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