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받자마자 숟가락으로 뒤적이더니 "밥이 어디 있어요?"라고 말하던 한국 손님 하나는 계산 후 나가기 전에 나를 붙잡고 질문을 던졌다.
"여기 직원이에요?"
"몇 살이에요?"
"아.. 아르바이트하고 있고, 서른입니다."
"아 어리네, 부럽네요 어려서."
누군가는 나에게 어리다고 말하고,
"여기서 뭐하고 살아요?"
"석사 공부하고 있습니다.'
"어휴 졸업하면 몇 살이야. 빨리 졸업해야겠네요."
누군가에게 나는 걱정이 될 정도로 많은 나이다.
막 스물이 됐을 때, 나는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학에서도, 사회에서도 나는 어리고 또 어렸다.
그 이후로 10년, 나는 그렇게 '서른이(서른과 어린이의 합성어)'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서른에 맞이하는 세상은 이십 대 때와는 사뭇 다르다.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른 이르고, 빠르다의 기준, 늙고 어리고의 기준이 적나라하게 적용된다.
무언가 이룬 것 없이 살아가는 스스로를 자책할 땐, 아직 무언가를 이루기엔 어리고,
알바생이나 학생으로 살기엔 너무 늙은 나는 이것이 진짜 어른이 되는 길목일까 생각한다.
그런 서른이 너무 가혹해서, 만 나이로 스물여덟임을 강조하고 사는 나는 어쩔 수 없는 '서른이'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기로에 서 있는 나의 나이를 공개하는 것을 고민한다.
그래서 누군가에겐 서른, 누군가에겐 스물여덟이 된다.
타인의 평가에 예민한 성격 탓에 자꾸만 그 모호한 기준을 맞춰주려 노력한다.
그래도 유일하게 나를 어느 기준에도 밀어 넣지 않는 유일한 내 사람이 있다면,
그건 우리 엄마다. 학생에서 직장인이 될 때도, 직장인에서 학생이 되겠다고 했을 때도,
알바생으로 생활을 전전하는 나를 보면서도. 그녀는 나이를 거두고 나를 봤다.
그녀를 보며 생각한다.
서른은 어른이 되는 길목이 아니라, 자칫 꼰대로 빠질 수 있는 위험한 길목 아닐까 하고.
어른과 꼰대 사이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 이들 속에 사는 나는
여전히 서른이 부담스러운 '서른이'고, 아직 진정한 꼰대로 거듭나지 못한 '서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