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오기 전부터, 일본에 살면 디지털과 초고속에 익숙해진 내가 아날로그적으로 살아가게 될까?라는 소소한 궁금증이 있었다. 살아보면서 어떻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느낀 점들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아날로그적인 요소들이 한국보다는 확실히 많다. 하지만 일본이 느리다기보다는, 한국이 극도로 발전했다고 본다. 머리로 잠깐 떠올리기만 해도, 한국은 상향평준화된 일상으로 누구나 간편하게 자동화, 디지털화, 비대면화로 진행할 수 있는 과정들이 많다. 그런 절차가 익숙한 사람들에게 일본 생활은 조금 답답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아날로그라고 하면 일단 대면 진행이 많은 것을 의미하는데, 시간적인 제약이 생기기 때문에 불편함을 한 번 겪고, 수많은 서류를 준비해야 되는 복잡함에 두 번째 불편함을 겪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 어렵고, 다 아날로그냐라고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단적인 예시로, 일본 회사는 아직도 팩스를 사용하고 있다는 말을 어디서 본적이 있다. 나는 팩스를 직접 사용해 본 적이 없어서,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꽤 놀랐었는데 실제로 일본 살면서는 본 적이 없다. 물론, 회사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자동결제 시스템도 잘 되어있다. 코로나 때부터 일본에서도 비대면 결제가 중요해지면서 페이 서비스가 갑자기 빠른 속도로 탑재되고 발달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현금 가능한 가게들은 한국보다 훨씬 많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페이페이, 라인페이, 애플페이가 있다. 이외에도 한국의 네이버페이랑 연동되어 있는 알리페이도 가능하고, 카카오페이도 가능하다고 한다. 근데 페이페이에 금액을 충전하려면 페이페이 카드가 필요한데 나는 페이페이 카드가 아직 없어서, 편의점에 가서 현금을 넣고 ATM 기계로 충전하고 있다. 이런 부분들은 너무 불편하고 낯설다.
일상 속에서 우버택시, 우버이츠도 자주 사용한다. 우버이츠가 한국에 비해 수수료나 배달료가 너무 비싸서 자주는 사용하지 않지만, 저녁 늦게까지도 배달이 되고 불편함이 크게 없다. 추가적으로, 음식점에 들어갔을 때 큐알코드 주문, 패드 주문 가능도 한다. 특히 회전초밥 집에 들어가면 손님 모두 패드로 주문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반대로, 중요한 신고서나 안내는 집으로 종이 배달이 많이 온다. 무언가 잘못된 게 있으면 직접 구약소를 찾아가거나 수기로 서류에 내용을 기입해서 우체통에 넣어야 한다. 마이넘버 카드라는 일본의 민증 같은 개념의 카드가 있는데, 이 카드도 실물로 받아보기까지 과정이 복잡하다. 인터넷으로 신청은 하더라도, 그것을 수령하려면 특정 장소에 가서 받아야 되고 그때 바로 받을 수도 없고, 다시 몇 주 뒤에 다시 방문하나, 정확한 과정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모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절차다.
수도세, 월세, 전기세 통지가 종이로 배달 오는 것이 기본이고, 그 종이를 편의점에 들고 가서 바코드를 찍어 결제한다. 만약에 자동이체를 하고 싶거나, 종이가 아닌 문자로 내용을 전송받고 싶으면 별도로 전화 또는 인터넷으로 신청을 해야 된다. 생각보다 중요한 서류들은 인쇄를 하고, 인감을 찍어서 우편으로 제출을 해야 된다. 물론 우편이 아니라 직접 대면으로 구약소에 가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게 더 귀찮고 오래 걸리기 때문에 우편을 선호하기는 한다.
이야기하다 보니, 종이, 인감도장, 대면 제출, 우체통, 대기시간 등 피부로 와닿는 아날로그가 참 많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도 살아보니 미국이나 유럽도 오래 걸리고, 아직도 수많은 서류를 요구하는 곳이 많았다고 느낀다. 모든 것이 자동화, 디지털화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상황마다, 경우마다 장단점이 있다고 본다. 아직 아날로그로 남았으면 좋겠는 것들이나, 더 자동화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이 다르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변하게 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