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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폰기에서 만난 오케스트라

by 케이

어느 봄날 침대에 누워있다가, 아직 도쿄에서 한 번도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대로 노트북 화면을 올려 '도쿄 오케스트라'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의외로 빠르게 유명한 몇 공연장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 '산토리홀'에 가기로 했다.


그리고 공연 당일이 왔다. 6월 초, 낮 12시면 햇빛이 강해서 양산을 써야 했다. 집에서 30분 정도 걸었을까, 산토리홀의 윤곽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아크 힐스라는 큰 문화복합센터처럼 생긴 단지 옆에 있었다. 예전에 한 음식점을 찾아 들어왔던 기억이 있는데, 여기서 이런 공연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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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할 땐 후덥지근한 바깥공기 때문에 티셔츠가 등에 붙었지만, 시원한 실내의 에어컨 공기 덕분에 금방 입장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친절한 스태프분들의 안내와 함께 2층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15분 정도 기다리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오렌지 주스 하나를 주문했다.


그리고 공연장으로 입장했다.


나는 오케스트라 공연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다. 무언가를 이해해 보고자 한국에서도 여러 공연을 혼자 가보고 뉴욕 카네기홀, 밀라노 스칼라좌도 가봤지만 많은 공연들을 보면서 '아직 난 멀었구나'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그래서 박식한 사람보다는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공연에 있어 다른 매력을 느끼는데, 연주자들이 집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떨리기도, 어렵기도 할 텐데 그럼에도 완성도 높은 합주를 해내는 모습에 형용하기 어려운 감동을 받는다.


이 순간 그 자체에 집중하며 바이올린 키는 연주자들, 지휘자, 그리고 공연을 바라보는 관객들을 보고 있노라 하면 시간이 역설적으로 멈춘 느낌을 받는다. 롯폰기 외곽은 여전히 북적였겠지만, 안에서는 공연 소리 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시끄러운 이 도시가 이렇게 고요할 수 있다는 점이 어색하다.


누군가와 공연에 대해서 이야기를 같이 나눌 수도, 내 감상을 이야기할 기회도 없지만 그 나름대로 나 혼자 곱씹어볼 수 있는 시간이다. 일상 속에서 이토록 집중하는 시선을 볼 기회가 얼마나 될까, 이 사람들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무언가를 기다리고 준비한다는 감정은 참 애틋하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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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지휘자가 인사하자 박수가 정중히 퍼졌다. 연주를 듣고 다시 거리로 나서니 밝은 햇살이 내렸다. 사람들은 도쿄를 빠르고, 차갑고, 복잡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이 도시가 얼마나 조용해질 수 있는지를 보았다. 오케스트라는 무대 위에서 연주됐지만, 진짜로 울린 건 롯폰기라는 도시 그 자체였다. 낯선 도시에서 익숙한 음악을 듣는 건, 어쩌면 나 자신을 다시 조율하는 일이었다.


클래식을 이해하고, 100% 빠져든다는 느낌이 뭔지 아직 정확히는 모른다. 여러 책을 통해 공부해 봤지만, '이론적인 지식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부분이 있구나'를 다시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앞으로 더 배울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새로움이 많다는 점은 위로를 주었다. 벌써 1년이 지난 공연이었지만, 아직까지도 머릿속에 어렴풋이 이때의 감정이 남아있다. 다음에 음악에 대한 성숙도가 높아진 이후에 다시 공연장에 발을 들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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