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5 Orrington Avenue
남들보다 조금 이른 6월, 졸업생들이 헤반스톤(Heaven+Evanston)이라며 그리워해 마지 않는 시카고 북쪽 소도시 에반스톤에 들어왔다. 노스웨스턴대학교 Northwestern University 의 켈로그 경영대학 Kellogg School of Management은 1Y라 불리는 1년 짜리 MBA 프로그램이 있다. 기존 경영학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1년 차에 들어야 하는 필수과목들을 면제하는 과정이었다. 경영학 학사와 석사가 있던 나에게는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적어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1725 Orrington Avenue, Evanston, Illinois, United States"
내 첫 미국 주소다. 켈로그 학생을 위한 기숙사였다. 넓은 방과 화장실을 갖춘 방 하나짜리 아파트를 배정받았다. 이곳의 여름은 섭씨 30도가 넘지만 습도가 높지 않아 버틸만한, 아름다운 계절이다. 여름이 지나면 너무도 빨리 겨울바람이 불어오곤 했다. 노스웨스턴의 대학도시인 에반스톤은, 미시간호 서쪽에 위치한 아름답고 깨끗한 도시이다. 카투사로 군대생활을 한 나는, 1947년에 지어진 오래된 미국식 아파트에 들어서면서 군대의 막사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것이었다.
비지니스스쿨은 FOMO(Fear of Missing Out)가 심한 곳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가급적 모든 모임과 술자리에 참석한다. 강도 높은 수업과 함께 온갖 네트워킹 모임에 참석하느라 피로에 찌들어갈 때 즈음, 늦게 출발한 새신부가 도착했다. 미국에서의 달콤한 신혼생활을 기대했다. 혼자 지내던 두 달여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하지만, 키가 작은 새신부는 미국에 도착하는 날부터 커다란 건물과 낯선 사람들을 버거워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겨울바람이 불어왔고, 오래된 건물에는 바람이 새어들어왔다. 우리는 쓸쓸하게 겨울을 맞았다.
처음에는 합리적으로 보였던 1년 과정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MBA의 구직활동은 대부분 2년 과정에 맞춰져 있다. 컨설팅, 은행, 테크 업종의 회사들에서 1년 차에 인턴을 하고, 인턴 실적을 기반으로 2년차에 제안을 받는 시스템이었다. 내가 원했던 PE와 헤지펀드에는 MBA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없었다. 더더욱이 뉴욕도, 캘리포니아도 아닌 아닌 미국 중서부에서 외국인이 PE에 바로 자리를 잡는 경우는 드물었다.
당황했다. 당황한만큼 더 필사적이었다. 내가 필사적일 수록, 하지만, 외로웠던 나의 새신부는 더 외로워졌다. 우리는 싸우는 날이 싸우지 않는 날보다 많았다. 이방인으로 왔지만, 나는 미국인이 되어야 직장을 구할 수 있었다. 적어도 그렇게 믿었다. 어차피 나는 한국에서도 이방인이었고, 나의 정체성은 한국에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입장은 나와 달랐다. 한국에서 최고의 엘리트 중 하나였던 그녀는 미국에서도 한국인으로 살기를 원했다. 영어가 익숙해 져야만 하는 나는 미국 TV를 보고, 야구와 풋볼을 "공부"했다. 하지만, 영어와 미국문화가 스트레스였던 그녀는, 집에서는 한국사람으로 쉬고 싶어했다.
스폰서를 해주는 회사도, 부모님의 도움도 없던 우리는 가난한 학생 커플이었다. 우리는 루 말나티 Lou Malnati's 라는 유명 시카고 피자집에서 늘 "루" 피자와 "말나티" 샐러드를 주문해 집에서 먹곤 했다. 졸업 후에서야, 그녀는 나에게 얘기했다.
"내가 왜 늘 그 조합을 주문했는 지 알아?"
"그렇게 먹는 것이 제일 싸서 그랬어."
내 욕심을 위해 이 사람을 어디까지 끌고 왔던 것일까? 나는 그녀가 루 피자를 정말로 좋아한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