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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J Mar 10. 2024

서울을 떠나며

또다시 이방인이 되었다

면접에서 역대 최고점을 받고 운용사에 입사를 한 첫 해,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더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 회사에, 그리고 스스로에게 하루하루 실망했다. 술잔은 채워져 갔고, 마음은 비워져 갔다. 일을 대강하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야근이 잦아졌고, 야근과 회식으로 고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사람들을 만났다. 쉽게 마음을 주고 쉽게 상처를 받았다. 퇴근 후에 작은 자취방에 누워 천장을 보는 시간이 늘었다.  


졸업 후 6년 간 겪고 싶지 않았던 일들을 너무 많이 겪었다. 1년 반 만에 이직했던 외국계 운용사에서는 온갖 부정을 저지르는 상사를 만났다. 대리 밖에 되지 않았는데, 일을 하려면 대표와 싸워야 했다. 몇 달이 지나 그가 과장 선배 하나와 나를 어느 술집으로 데려갔다. 투자 실적이 나지 않으니 도와달라... 대표가 과장과 대리에게 부탁을 하는 자리였다. 그 순간, 대표의 술친구인 차장이 여자 하나와 함께 들어왔다. 그 여자는 대표에게 오빠라고 부르며 달려가 안기고 있었고, 과장은 어이없어했다. 


차장이 과장에게 형수님한테 뭐라고 했냐며 화를 냈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대표와 차장을 바라보며 내뱉고 말았다. 


 "참... 가지가지 한다..."


대표는 차장과 여자를 내보냈고, 정신을 차리고 다시 한번 부탁을 했다. 나는 그와 함께 일할 자신이 없었다.        


미뤄왔던 GMAT 시험을 보았고 좋은 점수를 받았다. MBA 지원을 고민하던 시기, 내 커리어 중 가장 열정적이었던 3년을 보낸, 내 커리어 중 가장 업무조건이 열악했던 그곳에서 연락을 받았다. 국민연금이었다. 조만간 글로벌 부동산 투자 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가 되는 분은 차장에 불과했고, 나에게 돈을 쓰지 않고 공부할 방법이 있다며 팀에 합류하기를 권했다. 그 말이 거짓임을 알면서도 나는 팀에 합류했다. 


젊은 영혼들이 식당과 술집을 찾아 몰려들던 2010년대 초 가로수길. 그 건너편에 당황스러울 정도로 좋은 인재들이, 겨울이면 말라붙은 벌레가 천정에서 떨어지는 사무실에서 업계 최저 연봉을 받으며 해외출장을 다니고 있었다. 호텔비는 뉴욕이 1박에 124불, 시카고가 1박에 90불이었다. 출장을 다니려면 개인 돈을 써야만 했다. 제대로 된 해외투자가 처음 이뤄지던 시기였다.


한국 밖에서는 모두가 인정하지만, 정작 그 혜택을 보는 이들은 비난해마지 않던, 한국 기관투자자들의 글로벌 대체투자 포트폴리오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정치인들은 왜 국내에 투자하지 않는지, 왜 꼭 출장을 가야 하는지 지치지도 않고 공격을 해댔다. 우리는 새벽까지 일했고, 비행기의 좁은 이코노미 석에서 수없이 많은 자료를 읽으며,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일정을 욱여넣어 출장을 다녔다. 1년이 채 되지 않아 병원을 전전하고 있었고, 이직하기 전보다 낮은 연봉을 받고 있었다. 나는 왜 내 인생을 내팽겨치면서까지 일하고 있는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고민해야 할 시기였다. 어려운 환경에서 최고의 결과를 이끌어냈지만, 어디에서 내가 배운 것을 쓸 수 있을지 몰랐다. 결국 다시 유학을 결정했다. 최고의 MBA 프로그램 중 하나에 합격했다. 부러워하는 이들 사이에서 내 마음은 착찹했다. 실상은 세상에 대한 항의였다. 내가 지낸 시절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었다. 이미 한 번 쓰러지고 나서야 내 병이 과로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가진 모든 저축을 모았고, 보험과 주택청약저축도 정리해 버렸다. 다시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떠날 때 즈음이 되니 익숙한 모든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내 열정과 노력이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할 것임은 분명해 보였다. 원하는 것이 있어 목표를 가지고 떠난 것이 아니었다. 이곳에 지쳐서 밀려 떠나갔다. 내가 모르는 곳, 내가 겪어보지 못한 사회는 조금 더 낫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십여 년 서울에 올라왔을 땐, 늘상 혼자만이 있는 것 같은 느낌으로 살았다. 서울을 떠나며, 나는 다시 또 이방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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