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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J Mar 24. 2024

낯선 곳, 두 번째

1725 Orrington Avenue

PE와 투자 분야에서 일자리를 찾는 것은 미국에서 나고 자산 이들에게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루하루 압박감은 심해져갔다. 매일 이메일을 보내고,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커피챗 Coffee Chat을 했다. 그렇게 MBA 과정 반을 보내고 나서야 채용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지 않고 1년 과정을 시작한 것을 후회했다. 내 인생은 많은 변화를 겪고 있었다. 나는 1년 전에 결혼했고, 다른 나라로 떠나왔으며, 새로운 직장을 찾고 있었다. 너무 많은 일을 한 번에 벌리면서 감당 가능하리라 생각했던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 일었다. 


뉴욕에서 친분이 있던 글로벌 PE업체 대표를 만나 졸업 후 일할 수 있는 자리가 있을 지 물었다. 내게 돌아온 답변은, 


"우리가 하는 일은 똑똑한 친구들이 필요하지만, 천재가 필요하지는 않아." 

"너는 나이가 많아서, 주니어 역할을 맡으면 너를 아는 시니어 직원들이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

"... 솔직히 말해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20대 백인 남자애야."

   

허탈했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솔직하게 이야기해 준 것이 고마웠다. 실망감을 안고 시카고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W사의 K는 누구나 인정하는 좋은 사람이었다. 늘 나를 흔쾌히 만나주며 여러가지 조언을 주는 것이었다. 어느날 K에게 W사에서 무료로 인턴을 하겠다고 제안했다. 회사에 남는 책상 하나와 컴퓨터 한 대는 있을 것도 같았다. 나는 똑똑했고, 쓰러질만큼 과로를 해 왔으며, 무엇보다 엑셀에 미쳐있었다. 일단 일을 시작하면, 그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었다.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그는 경영진을 설득해냈다. 그렇게 나는 W사 역사상 첫 MBA 인턴이 되었다.


내 인생은 더 복잡해졌다. 나는, 학비를 낸 만큼, 최대한 혹독하고 유익한 수업만을 들었다. FOMO에서는 벗어날 수 없었다. 학교 모임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일주일에 두 번 시카고로 출근했다. 에반스톤에서 시카고로 가는 길은,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를 떠올리게 했다. 늘 생각보다 멀었고, 도착하면 피곤했다. 


졸업 후 W사에서 아시아를 담당하는 "Regional Director"가 되었다. 아시아 투자자 담당을 총괄하는 자리였다. 학교에서 근 십여년 내 미국 내 PE업체에 바로 취업한 외국인 학생은 단 두 명이었다. 나는 그 두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다시 시작하기 위해 미국에 왔다. 한국인으로서 남아 있기 위해 떠나온 것이 아니었다. 아시아인이 아닌 미국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 평범한 업무를 맡고 싶었다. 시간이 조금 더 주어진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보여줄 기회를 잡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의 상황은 그런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안도했지만, 기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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