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 N. Michigan Avenue, Chicago
"the Streeter"는 완벽한 아파트는 아니었지만, 필요한 많은 것을 갖춘 곳이었다. 쾌적한 운동시설과 라이브러리, 파티가 가능한 공용 거실을 갖추고 있었고, 1층에는 커피숍과 D4라는 아이리쉬 펍(Irish Pub)이 자리하고 있었다. D4는 친지들을 만나기에 좋은 장소였고, 꽤 괜찮은 브런치를 제공했다. 옆 건물에 요크(Yolk)라는 유명한 브런치 가게가 있었는데, 사실 난 D4의 브런치가 더 좋았다.
직장인 W사는 시카고 최대의 번화가인 미시간 애비뉴(N. Michigan Avenue)에 위치해 있었다. 자연스럽게 매일 아침 미시간 애비뉴를 걷게 되었다. 을지로 입구에서 롯데백화점 본점을 거쳐 회사에 가는 이가 있다면 비슷한 기분일 것 같다. 집에서 회사까지는 걸어서 15~20분 거리였는데, 간혹 점심에 집에 들러 라면을 끓여 먹고 복귀하곤 했다.
내 자리는 K의 사무실 밖, 비서들의 자리가 있는 곳이었다. K와 나의 보스인 E, 그리고 나는 비서 한 명을 공유하고 있었는데, 비서인 S는 하루의 대부분을 본인의 401K 연금계좌를 보는데 보내는,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였다. S는 인턴시절부터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아시아인인 내가, 이미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려보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K가 E를 설득할 때도 별도로 들어가 나를 꼭 뽑아야 한다고 이야기해주었다고 한다. 고마웠다.
내가 본격으로 일을 하게 되면서 S와의 관계는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E와 K, 그리고 나는 업무 상 출장이 많았다. S는 우리의 출장을 돕고, 법인카드를 처리하는 등 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나는 아시아 담당으로 모든 출장이 해외인 관계로 예약은 스스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S가 나에게 본인 업무를 부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미 제출한 내역서를 잃어버리거나 본인이 잃어버린 서류를 찾아달라고 하는 일이 일상이었다.
S에게 나는, 비서로서 보조를 해야하는 사람이 아닌, 본인이 도움을 주어야 하는, 그리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외국인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불편해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S는 내가 W사에서 일하기 위해 본인을 이용했다며 비난했다. K는 위로해 주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몰랐다. 비어있다는 이유로, 충분히 넓고 막혀 있다는 이유 따위로, 비서 자리에 앉는 것을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내가 앉아 있는 자리가 사람들이 바라보는 나의 위치가 되었다. 나는 시작하자마자 나에 대한 차별에 맞서 싸워야 했다. 난, S와 계속해서 따뜻한 관계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너무 바빴고, 비서의 보조가 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내 비서와의 싸움으로, 나는 나의 자리를 찾기위한 노력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