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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J Apr 14. 2024

사무실

900 N. Michigan Avenue, Chicago, IL

취업을 하기는 했지만, 나는 결코 신뢰받는 직원은 아니었다. "아시아 지역 담당 이사 (Regional Director of Asia")라는 직함과는 다르게, 많은 이들이 내가 그들을 대표해서 그들과 그들의 투자전략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차라리 투자를 위한 엑셀 모델로 신임을 받던 인턴 시절이 더 좋았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바보 같은 면이 있었다. 누구에게나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사람 좋은 척을 하려 했다. 한국인이어서 그렇다. 그렇게 생각했다. 사람들은 왜 내가 웃으며 이야기하는 지 몰랐고, 어색해진 얼굴에서는 영어 발음이 새어나와 말하는 것도 잘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어제 보았던 미국 드라마를 떠올리며, 참고 잘 해주면 좋은 대접이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일을 시작한 두 번째 해, 한국에서만 7억불, 우리 돈으로 8천억원에 가까운 돈을 모았다. 시작하는 단계에 있던 대출 플랫폼(Debt Platform)에서 답이 나왔다. 한국보험사들이 글로벌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면서, 구조화된 미국 선순위 부동산 담보대출(Senior Mortgage)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렇게, 나는 회사가 지난 십여년 간 원해왔던 아시아계 투자자들을 확보하게 되었다.     


즉각 견제가 들어왔다. 아시아 출장으로 타이페이에 있을 때, 늘 내 역할을 하고 싶어하던 파트너인 M에게 연락이 왔다. 그는 회계담당이었다. 투자 컨설팅 사 한 곳에서 싱가포르에 있는 중국계 자산운용사(Wealth Management)를 연결하고 싶어하는데, 괜찮겠느냐는 이야기였다. 이런 이메일이 오고 갔다.  


"마음대로 해. 어차피 지난 번 일로 잃을 것도 없어."


"무슨 일이 있었지?"


"지난 번에 그쪽에서 펀드 법률서류 요청할 때 네가 한 달 동안 응답을 안 했지. 그쪽에서 화가 많이 났었어."


M은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기로 유명한 사람이었고, 그렇게 투자자에 대응을 하지 않았던 것은 당연히 나를 괴롭히기 위한 일이었다. 문제는, 그가 수신인에 모두를 넣고 나에게 그 이메일을 보냈다는 것이다. 우리는 같은 보스 밑에서 일하고 있었다.  


오랜 출장을 마치고 돌아와 E의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그 파트너가 갑자기 사무실로 뛰어들어와 외쳤다.


"You, Fucking Liar!”


국민연금 시절이후로 거북목이 심해져 출장 다니는 것이 늘 괴로웠다. 시차적응도 못하고 돌아오자마자 보고를 하고 있던 나는 멍하니 서서 이어지는 욕을 듣고 있었다. 


나를 괴롭히기 위해 그가 무시했던 그 투자자는 중국 최대 업체였다. 한달에 1조원의 돈이 오가는 곳이었다. 그 업체의 PE 총괄이 내 친구였고, 나는 친구를 통해 부동산 부문을 소개받았던 터였다. 그런데 그 파트너는 그들의 이름조차 기억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E의 중재로 우리는 일단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한동안 괴롭힘이 이어졌다. 미국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통상적인 관념은, 소심하고 싸우지 않고 피하는 사람들이었다. 그에 반해 미국인들은, 특히 유대인들은, 말로 싸우는 것에 익숙했고, 사내정치에 능숙했다.


한동안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고민했다. 일주일 정도의 고민 후에 나도 결론을 내렸다. 나는 M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그리고 방문을 잠궜다. 그리고 당황하는 그에게 한국말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너 죽을래?"


쉼없이 한국말로 욕을 쏟아냈다. 내 기분이 풀릴 때까지. 그는 절대로 HR에 보고하지 못할 것이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니. 영어로 몇 마디를 덧붙였다.


"나는 밖에서 사람을 만나는 사람이고, 너는 사무실에만 있는 사람이야. 앞으로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 회사는 너무 좋은 회사인데, 너라는 사람 때문에 회사 일이 잘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할 거야. 이렇게 1년만 지나고 어떻게 되는 지 보자."


그의 사무실을 나와 바로 E의 사무실로 갔다.


"일을 크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그냥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미흡한 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관료주의와 사내정치는 아시아에서 시작되었다. 사내정치는 드러내고 하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된 사내정치는 당사자들이 모르게 하는 것이다. 나는 제대로된 한국식 사내정치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M은 그 후로 2주 간 미안하다는 말을 하며 나를 따라다녔고, 모두는, 심지어 나를 불편해하던 S조차 그런 M을 보며 통쾌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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