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 N. Michigan Avenue, Chicago, IL
오래지 않아 개인 사무실을 배정받았다. 투자회사를 포함한 미국의 전문직종 업체들은 대부분 개인 사무실을 준다. Analyst나 Associate 일부만이 공용 사무실 안에 있을 뿐, 특별히 높은 직책이 아니어도 개인 사무실을 받을 수 있다. 나도 개인 사무실에 앉아 문을 닫고 있는 데 금방 적응하게 되었다. 처음 배정받았던 사무실은 창문이 없는 내측 사무실이었다. 특별히 기억나는 것이 없다. 팀원들 사무실과 거리가 있어서, 늘 K의 사무실에 앉아서 여러 이야기를 했던 기억만이 남아 있다.
미국에서 사무실의 위치는 회사 내 권력을 의미한다. 얼마나 큰 지,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어떠한 지, 특히, 코너에 위치해 있는지 아닌지가 그 사람의 사내 입지를 의미했다. 어떤 사무실을 가지고 있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위치가 보인다. 얼마나 편리한 시스템인가? 더 좋은 사무실을 차지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지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사무실 입지에 관한 정치는 조금 더 복잡했는데, 팀 내 경쟁 외에 창업멤버인 경영진 간 조율 또한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2017년 말 사무실 인테리어를 바꾸면서 대대적인 자리 개편이 있었다. 프론트와 백을 나누어 층을 나누는 방식이었다. 눈치게임은 공사가 시작될 때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나름 느긋했다. 무엇보다 우리 팀에는 시니어가 몇 명 없던 탓에 나에게 배정되는 사무실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중간중간 사무실 배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웠지만, 특별히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옮겨가는 날을 이주일 남겨놓고 알게 되었다. 내 사무실이 팀에서 떨어져 기둥이 있는, 창문이 반쯤 가리는 곳으로 배정이 되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옆 팀에 갓 승진한 어린 파트너 하나가 기둥이 있는 사무실이 싫어 내 사무실을 뺏고자 지속적인 로비를 한 것이었다.
이런 배치를 승인한 E에게 섭섭함이 밀려들었다. 내 사무실까지 올 일은 없겠지만, 그렇게 쉽게 그 방을 내주었다니. 아시아인에 영어가 완전히 편하지 않았던 나는, 내 사회적인 입지를 위해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다른 팀의 주니어가 나에게 헛소리를 할 때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괴롭혔다. 그래야만 그와 다른 주니어들이 나를 회사의 어른으로 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쉽게, 물리적인 내 자리를 양보하다니?
의기양양한 그 어린 파트너를 보며, 나는 더욱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E의 사무실로 가 몇 번 이야기해 봤지만, 이미 결정되었고, 어차피 너는 출장이 많으니 상관이 없지 않겠느냐는 형식적인 답변만이 돌아왔다.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내 자리였던 것이다. 발버둥쳐도, 내 지위는 거기까지였다.
사무실은 나름 정성 들여 꾸몄다. 와이프 사진과 우리가 함께한 사진들을 가져다 놓았다. 작게나마 그림도 걸어두었다. 그렇게 나는 언어보다도 정치로 미국에 적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