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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J May 05. 2024

사무실, 두 번째

Michigan Avenue

출근 후 오래지 않아 개인 사무실을 배정받았다. 투자회사를 포함한 미국의 전문직종 업체들은 대부분 개인 사무실을 준다. Analyst나 Associate 일부만이 공용 사무실 안에 있을 뿐, 특별히 높은 직책이 아니어도 개인 사무실을 받을 수 있다. 나도 개인 사무실에 앉아 문을 닫고 있는 데 금방 적응하게 되었다. 처음 배정받았던 개인 사무실은 창문이 없는 내측 사무실이었다. 작았다는 것 외에 특별히 기억나는 것이 없다. 팀원들 사무실과 거리가 있어서, 늘 K의 사무실에 앉아서 여러 이야기를 했던 기억만이 남아 있다. 


미국에서 사무실의 위치는 회사 내 권력을 의미한다. 얼마나 큰 지,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어떠한 지, 특히, 코너에 위치해 있는지 아닌지가 그 사람의 사내 입지를 의미했다. 어떤 사무실을 가지고 있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위치가 보인다. 얼마나 편리한 시스템인가? 더 좋은 사무실을 차지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지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사무실 입지에 관한 정치는 조금 더 복잡했는데, 팀 내 경쟁 외에 창업멤버인 경영진 간 조율 또한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2017년 말 사무실 인테리어를 바꾸면서 대대적인 자리 개편이 있었다. 프론트와 백을 나누어 층을 나누는 방식이었다. 눈치게임은 공사가 시작될 때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나름 느긋했다. 무엇보다 우리 팀에는 시니어가 몇 명 없던 탓에 나에게 배정되는 사무실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중간중간 사무실 배치를 바꾸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웠지만, 특별히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옮겨가는 날을 이주일 남겨놓고 알게 되었다. 내 사무실이 팀에서 떨어져 기둥이 있는, 그래서 창문이 반쯤 가리는, 곳으로 배정이 되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옆 팀에 갓 승진한, 나와도 꽤나 친하게 지냈던, 파트너 하나가 기둥이 있는 사무실이 싫어 내 사무실을 뺏고자 지속적인 로비 활동을 한 것이었다. 


어처구니가 없기도 했지만, 일단 이런 배치를 승인한 내 보스에게 섭섭함이 밀려들었다. 내 사무실까지 올 일은 없겠지만, 그렇게 쉽게 그 방을 내주었다니. 아시아계에 영어가 완전히 편하지 않았던 나는, 내 사회적인 입지를 위해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다른 팀의 주니어가 나에게 헛소리를 할 때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괴롭혔다. 그래야만 그와 다른 주니어들이 나를 회사의 어른으로 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쉽게, 물리적인 내 자리를 양보하다니?


의기양양한 그 어린 파트너를 보며, 나는 더욱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보스의 사무실로 가 몇 번 이야기해 봤지만, 이미 결정되었고, 어차피 너는 출장이 많으니 상관이 없지 않겠느냐는 형식적인 답변만이 돌아왔다.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었다.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것이 내 자리였던 것이다. 발버둥쳐도, 내 지위는 거기까지였다. 


사무실은 나름 정성 들여 꾸몄다. 와이프 사진과 우리가 함께한 사진들을 가져다 놓았다. 작게나마 그림도 걸어두었다. 하지만, 너무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나에게 더 높은 지위를 의미하는 사무실로 곧 떠날 수 있도록. 그렇게 나는 언어보다도 정치로 미국에 적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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