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outh Korea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가는 출장이었다. 이번 출장은 Equity투자를 담당하는 대표급 파트너인 RB와 Debt을 총괄하는 RR을 모시고 가는 길이었다. 한국의 국민연금과 일본의 Japan Post 등 규모가 큰 투자자에게 최상위급 투자운용역을 소개하고 친분을 만드는 것이 이번 출장의 가장 큰 목표였다. RB는 골드만삭스 출신으로 홍콩에서도 근무한 적이 있는, 상대적으로 아시아에 친숙한 분이었고, RR 역시 골드만삭스 출신으로 뉴욕과 시카고에서 부동산 대출을 담당하던 분이었다.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에서 도쿄 하네다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도쿄에서의 시작은 순조로웠다. 특히, 하네다 공항에는 VIP입국절차를 통해 입국절차를 쉽게 통과할 수 있었는데, RR이 공항에서 "VIP?"를 세 번이나 외쳤기 때문이었다. RR은 일행으로 함께 VIP라인을 이용하게 된 우리를 보면서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것이었다. 도쿄의 샹그릴라는 서울 호텔들의 두 배 정도되는 가격이었는데, 비싼만큼 정중했다. 도쿄역과 일본 왕궁의 근처로, 우리의 기존투자자였던 Norinchukin(일본의 농협은행)을 비롯한 투자자들의 본사와 가까웠고, 긴자가 가까워 영어가 되는 식사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도쿄에서의 이틀 간의 만족스러운 일정을 끝내고 서울로 향했다. 문제는 서울에서 시작되었다. RR이 인터넷 어디에선가 개농장의 뜬장 사진을 찾아 나에게 보여주며, 한국인들은 개고기를 먹지 않느냐며 놀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사진 밑에는 중국이라는 주석이 달려있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나는 스트레스와 인종차별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이지 진지했고, 또 매우 옹졸했다. 인종차별이 섞인 그의 놀림에 나는 정말 화가 났다.
처음 내가 보인 반응은, 냉정하게, 요즘 한국에는 그런 개농장은 거의 없으며 주석에도 중국이라고 되어 있지 않느냐고 항변하는 것이었다. RB는 인종차별 여지가 있는 RR의 발언이 불편했는지, 본인은 한국에도 여러번 머문 적이 있어 기회가 된다면 개고기를 먹어보고 싶다며, 내 편을 들었다. 하지만, 우리가 그럴 수록 RR은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 것에 만족해 하며 더 심하게, 과감하게 개고기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단순히 놀리려는 의도였고, 실제로 나와 가까워지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생각이 된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결코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고객을 만나러 온 한국에서 고객들을 비웃는 모습이라니?!
하루가 지나고 이튿날 우리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있는 전주로 향했다. 전주로 향하는 차 안에서 그는 어김없이 나에게 같은 기사와 사진을 보여주며, 한국인의 개식용 문화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의도는 분명했다. 내가 약이 오르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나는 정색하고 그를 바라보다가, 이렇게 얘기했다.
"우리가 펀드를 잘 모집하고, 성공적으로 클로징 디너(Closing Dinner, 펀드를 잘 종결했음을 축하하는 저녁 식사자리)를 하게 되면 내가 꼭 RR을 서울로 데려와야겠어요."
RR은 갑자기 무슨 이야기를 하는 지 몰라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내 말을 이어갔다.
"내가 서울에서 정말 맛있는 것을 먹여줄 건데, 절대로 무엇을 먹는 지 얘기는 안 해줄 겁니다."
내가 M을 한국어 욕으로 깨버린 이후로, 나의 악명은 하늘을 찔렀다. 많은 사람들은 통쾌해했지만, 내가 과격한 인사임을 모두에게 각인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RR은 내 이야기를 듣고 조용해졌다.
회의를 끝내고 전주 한옥마을에 위치한 한정식 집에 갔다. 셋이 앉아 끊임없이 나오는 반찬에 감탄할 때 즈음, 어디에선가 보리굴비 냄새가 풍겨왔다. RB와 RR은 그것이 무슨 냄새인지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다시 덧붙였다.
"기억하세요. 내가 정말 맛있는 것을 먹게 해 줄테니."
RR은 그날 점심을 굶었다. 그는 서울의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휴게소에서 산 오레오를 제외하고, 그날 내가 사주는 그 어떤 것도 입에 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