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kyo & Taipei
고백하건대, 아시아 출장들이 나쁜 기억만을 남겼던 것은 아니다. K는 내가 W사에 들어가기 전 오랜 기간 아시아를 담당해 왔었고, 처음 나와 만나게 된 것도 W사의 일곱 번째 플래그십(Flagship) 펀드 출자를 부탁하기 위한 미팅에서였다. 아시아를 담당하고 첫 두 해 정도는 함께 아시아 출장을 가는 일도 꽤 있었다.
한 번은 K와 도쿄 출장을 함께 갔다. 도쿄는 일반적인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섞여 사는 곳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경제인 일본에 투자하는 외국인들이 많이 있기도 하고, 많은 글로벌 기업들의 아시아 본사가 위치해 있기도 하다.
일본에서의 세일즈는 정말이지 쉽지 않았다.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큰 기관들은 순환보직이 보편화되어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눌 때 즈음이면 자리를 떠나게 되었다. 더 큰 문제는 서로 가지고 있는 고민을 이야기할 만큼 친해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요컨대, 도쿄는 미팅을 잡기는 쉽지만, 결과물을 내기는 결코 쉽지 않은 곳이었다. K는, 역시나 오랜 기간 마케팅에 몸을 담았던 사람답게, 다름에 대한 존중이 몸에 배어있는 사람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를 좋아했다.
하루는 그와 함께 미팅을 마치고 도쿄의 와규 철판구이집에 갔다. 고베 소고기를 하는 집이었다. 일본 고베의 와규는 15개 등급으로 구분되는데, 그중 가장 높은 등급을 "챔피언 비프"라고 부르고 있다.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챔피언 비프 구이를 K와 함께 먹었다.
타이베이를 갈 때는 대만 국적사인 에바에어(EVA Air)를 탔다. 인천 공항에서 타이베이로 떠나는 비행기를 확인했을 때는, 정말 깜짝 놀랐다. 비행기 외부에 헬로키티가 그려져 있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좌석 스크린 구성과 음식까지도 헬로키티를 주제로 제공되었다.
타이베이의 딘타이펑 본점에서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음식이 맛있기도 했지만, 직원들이 영어, 일본어, 한국어, 대만어, 북경어를 자유롭게 구사했다. K가 좁은 테이블에 큰 몸을 구겨 넣고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우리는 아시아 담당을 잘못 뽑은 것 같아."
그는 시카고 생활의 단비 같은 사람이었다. 늘 우리 부부를 챙겼고, 우리도 좋은 아시아 음식점을 발견하면 늘 K에게 말하고는 했다. 회사를 마치고 함께 맥주도 한 잔 하고는 했다. 요즘도 그는 여전히 내게 말한다.
"함께 Hopleaf(시카고의 맥주 전문점)에서 함께 마시던 맥주가 생각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