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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단상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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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J May 12. 2024

고요함

나는 다시금 술에 취했다. 그대로 집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다. 지하철에 내려 집과 반대 방향에 있는 위스키바로 향했다. 


자리는 거의 만석이었다. 바 테이블에 겨우 앉아 위스키를 둘러보다 Blanton's Single Barrel이 눈에 들어왔다. 시카고에서 마시던 버번이었다. 


옆 자리에 앉은 젊은 이가 갑자기 바텐더를 찾았다. 길게 본인의 위스키 지식을 뽐내며 본인이 생각한 것이 맞는지를 바텐더에게 물었다. 나는 내가 잘 모르는 이야기를 하는 그가 하찮게 느껴졌다. 


Blanton's를 한잔 주문하고, 이어폰을 꺼내 귀를 막았다. 핸드폰에서 스포티파이를 열고, 소리를 높이고, 넥스트의 "Love Story"를 시작했다. 


한 모금 한 모금 술이 올라오고, 옆에서 들리던 위스키 토론은 사라지고, 귀에는 기타 소리만 남았다.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음악은 시끄러웠지만, 마음은 조용해져 갔다. 


오래 전, 소리가 없어도 마음이 시끄러워 밤거리를 헤메었던 적이 있다. 노래방에 갔다. 옆방들에서는 시끄러운 노래소리들이 들려오고 있었다. 귀를 울리는 커다란 소리들 속에 묻혀 고요함을 느꼈다. 


음악이 끝나고 이어폰을 빼고 나니, 두 잔의 술이 비어있었다. 위스키바의 사장님이 다가왔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그곳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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