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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J May 19. 2024

서브프라임과 Equity Office

사모시장에서의 통찰력과 실행력

면접에서는 늘 그렇듯이 긴장이 되었다. 회장님이 직접 들어오시는 마지막 면접이었다. 세 명이 함께 면접장에 들어갔다. 자기소개와 함께 몇 가지 질문이 오가고, 다시 내 차례가 되었다. 박현주 회장님이 내게 물었다. 


"서브프라임이 왜 터졌을까요?"


"익숙함 때문입니다. 서브프라임이라는 모기지 제도는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기존의 모기지와 다른 상품인데, 시장참여자들은 서브프라임을 기초로 한 MBS(Mortgage-backed Securities, 다수의 부동산 담보대출을 모아 이를 기초로 발행한 채권)를 기존의 MBS와 동일하게 생각했습니다."


낮은 신용도를 모아 분산된 포트폴리오를 만든다고 해도, 모든 기초자산이 저신용 대출임은 변하지 않는다. 심지어 일부 저신용자들은 서브프라임을 이용해 다수의 주택을 구입했다. MBS와 파생상품이 레버리지를 만들기 전에, 기초가 된 상품 자체에서 레버리지가 발생하고 있었다. Fat Tail (통계적으로 드물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정규분포 상의 꼬리에 해당하는 현상들이 실제로는 자주, 큰 효과로 나타나는 것을 일컫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서브프라임을 기초로 한 MBS는 A등급으로 팔리고 있었다. 


석사 과정을 마치고 학계에 남지 않기로 결정한 그 때는, 서브프라임이 문제가 되고 있었지만 아직 글로벌 IB들의 파산과 주식시장 폭락으로 이어지지는 않은, "글로벌 금융위기"라고 불리는 것이 코앞으로 다가온 시기였다. 미래에셋은 주식시장에서는 글로벌 시장으로, 그 외의 섹터에서는 "대체투자"라고 불리는 부동산과 PE로 확장하고 있었다. 나중에 내 서브프라임에 대한 답변이 면접에서 최고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갖추는 것과 지나고 난 뒤에 이를 해석하는 것은 다르다.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해 아무리 훌륭한 해석을 내놓는다 할지라도, 이를 통해 돈을 벌 수는 없다.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시장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던 소수의 통찰력 있는 사람들이었다. 영화 "The Big Short"에서처럼, 다른 모든 이들의 비난을 감수할 만한 용기 또한 있어야 한다. 


블랙스톤의 2007년 Equity Office 투자사례는 시장에 대한 통찰력이 심지어 금융위기 직전에도 큰 돈을 벌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카고의 괴짜 억만장자 샘 젤 Sam Zell이 보유했던 미국 최대의 오피스 부동산 리츠인 Equity Office Property Trust를 사들였던 블랙스톤은, 사는 과정에서 500여 개 자산 중 많은 자산을 팔았다. 2007년 빈티지인 이 투자 건은 블랙스톤에게 3배가 넘는 수익을 가져다주었다. 


500여개의 자산으로 된 포트폴리오를 사들이면서 분류하고 동시에 구매자를 구해 팔고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프다. 엑셀 모델이 한 번 돌아갈 때 얼마나 오래 걸렸을 지 생각하면 끔찍하다. 다시 한 번 블랙스톤의 포트폴리오 딜에의 전문성, 복잡한 딜을 구조화하는 능력에 대해 찬사를 보내게 된다. 이 딜로 인해 적어도 몇명은 한동안 밤에 일하고 있었을 것이다. 


사모시장 Private Market에서는 가장 많이 버는 이는 가장 똑똑한 이가 아니다. 시장의 어떤 현상에 대해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를 실행할 네트워크와 자본력이 없다면 실제 실행할 수 없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서처럼 사모시장이 규제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경우, 이는 그 규제를 만든 이들이 가정하고 있는 요소들을 갖춘 이가 아니라면 실행력을 갖추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조금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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