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5 E Ohio, Chicago, IL
시간은 흘러갓고, 나는 출장 생활에 적응을 해 갔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캐리어를 찾은 것이 도움이 되었다. 내 캐리어는 잦은 출장으로 계속해서 망가졌는데, 대부분 바퀴가 말썽이었다. 스피너의 바퀴를 수리하는 것과 새로운 캐리어를 사는 것은 거의 가격이 같아 몇번이고 새 가방을 샀다. 그러다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바퀴가 네 개가 아닌, 두 개의 튼튼한 바퀴를 가진 여행가방이 있지 않을까? 아마존에서 두 개의 바퀴를 가진 투박한 샘소나이트를 찾아냈다. 그렇게 찾은 내 캐리어를 지금도 쓰고 있다.
두어달에 한 번 한국을 들렀고, 한국과 함께 일본 혹은 중국을 들렀다. 홍콩, 대만 타이베이, 싱가포르, 브루나이의 반다르 세리 베가완 같은 곳을 가는 경우도 있었는데, 특히 홍콩과 대만은 새로운 투자자를 발굴하기 위해 꽤나 공을 들인 장소이기도 했다. 출장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2주를 넘기지 않았다. 경험 상 2주일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아시아의 시간대에 적응을 하게 되고, 결국 미국으로 돌아갔을 때 다시 시차 적응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었다.
출장을 위해 많은 것을 정형화했다. 언젠가부터 생각 없이 출장 짐을 챙길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가능한 모든 스트레스를 없애버린 안전한 출장을 만들어갔다. 점점 더 기계적인 출장 프로세스를 만들고 보니, 출장 중에 시간이 있을 때면 주변을 산책하는 여유도 생겼다. 하지만, 나는, 내 주변의 많은 이들이 부러움을 금치 못했던 내 출장을 그렇게 즐기지 못했다. 시카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차가운 공기 속에 흰 입김을 불어내며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우버에 오르는 것이었다.
해외출장에 대한 내 마음은 복잡했다. 미국에 살면서 사실은 아시아 영업을 하고 있었던 나는, 이제는 한국 사람도, 미국 사람도 아닌, 다른 무엇인가가 되는 것만 같았다. 시카고에 돌아와서는 중국어 과외를 받았다. 일본어는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 공부한 터라 어느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인들과 중국인들은 나를 조금 친근한 미국인으로 대했고, 심지어 종종 호텔의 한국인 직원들조차 나에게 영어로 말을 걸었다. 그럴 때면 굳이 나도 한국말을 하지 않았다.
시카고에 대한 나의 애증은 그런 맥락에 있다. 나는 시카고에 살았지만, 정작 나의 일은 아시아 어딘가에 있었다.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뉴욕이나 LA에 살고 있었다. 나는 외로웠지만, 내 외로움을 나눌 수 있는 이는 주변에 없었다. 나는 시카고를 사랑했다. 도시의 차가운 공기가 나를 깨운다. 그 안에서 곳곳에 숨은 온기를 찾아냈다. 하지만,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따뜻한 도시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늘 낯선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떤 이는, 그들의 기준으로는, 그렇게 좋은 직업을 가진 내가 힘들어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고, 또 다른 이들은 여전히 나를 이방인으로만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