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생각] 6. 그 어떤 방해에도 흔들리지 않는

by 분더카머


오늘의 문장

제이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손끝을 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45년 동안 살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어. 이런거지. 인간은 어떤 것에서든지 노력만 하면 뭔가를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야. 아무리 흔해빠지고 평범한 것에서도 반드시 무엇인가를 배울 수가 있다구. 그 어떤 이발사에게도 철학은 있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어. 실제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도 살아남을 수가 없는 거지.“

『1973년의 핀볼』, 무라카미 하루키


내겐 일종의 컴플렉스 같은 것이 있다. 글을 직접 쓸 때, 용도에 따라 필기구를 정해놓고 집착하는 버릇이 있다. 책의 문장을 옮길 경우, 즉 나의 문장이 아닐 때는 되도록 잉크펜으로 노트에 필사한다. 이 필사에는 읽으면서 한 번, 쓰면서 또 한 번 오래 기억하고자 하는 열망이 담겨 있다. 그 문장들을 다시 정리해서 직접 타이핑해 블로그에 저장해둔다. 언제든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나의 문장, 무슨 말이던 직접적 의견을 개진하거나, 창작하는 단계에 들어가면 연필을 쓴다. 지우개로 문장을 고치는 타입은 아니고, 쓰면서도 글의 앞, 뒤, 중간을 넘나들고, 침범하는 생각들은 오른쪽 한켠에 공란을 내어 쓴다. 뒤죽박죽한 순서는 나만 볼 수 있게 정리한다. 연필을 밀고 나가면서 도구에 대해 생각한다. 매해 새 연필을 한 다스 사놓고서는 다 쓰자고 다짐컨만, 고작 몇 자루 쓴 것에 그치고 만다. 적은 경험에도 흑심을 누르면서 밀고 나가는 느낌은 매번 다르다. 오래도록 포기하지 못할 감 중의 하나다. 아직도 원고지에 연필로 문장을 이어 출판사로 전한다는 김훈 작가가 떠오른다. 고심의 흔적들이 오롯이 담긴 그의 지저분한 원고를 보고 싶다.

전공자가 아니면서 읽고 무언가를 써내보려고 하는 나의 시도는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 여러 텍스트 매체에 글을 올리는 것이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함은 아니다. 나를 알아봐 달라는 발부림은 더더욱 아니고. 그저 문장이 좋아 읽고 글이 좋아 쓰는 것뿐이다. 거창한, 확고한 목표는 없음에도 일련의 과정에서 품은 꽤 많이 들어간다. 작은 노력들을 뭉치면서 모아 보는데 결과를 알 수 없다. 그래서 재미있을 수도. 우리네 인생, 미리 알면 재미없으니까.

글과 관련된 이러한 과정에서 배우는 것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세계보다 책 속 문장의 세계에서 많은 감동과 위로를 받을 때도 있다. 가장 몰입하게 되는 순간 역시도 읽고 쓸 때이다. 살아가면서 무언가에 푹 빠져 시공간의 개념을 조금 놓게 되는 ‘몰입’의 중요성을 요즘따라 실감한다. 그 어떤 방해에도 흔들리지 않는 순간을 더 자주 느끼고 싶다. 그런 시간을 일부러 만들어서라도 보내려고 한다. 의도적인 고립이라 말할 수 있을까. 내일을 살아가기 위해 오늘의 나는 조금이라도 읽어야 하고, 써내야 한다. 배워야 하고, 느껴야 한다. 감동해야 하고,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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