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생각] 7. 궤도의 축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할

by 분더카머


오늘의 문장

어떤 열망이 찾아오면 현실은 자취를 감춘다.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열망이 차갑게 식고 나면 현실은 다시 가장 긴요한 문제가 되어 돌아오기 마련이다.

『양치기들의 협동조합』, 신용목


“아들 어린이집 운동회와 풀마라톤 일정이 겹치네요. 풀마를 위해 지금껏 달려왔는데, 회원님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어요?”

한 러닝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달리는 것의 즐거움과 이로움을 함께 공유하는 사람들의 댓글이 우후죽순 달렸다. 풀마라톤을 나가야 한다는, 아들 운동회를 가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갈리고, 가장 비싼 레이싱화를 신고 학부모 계주를 나가면 된다는 재미난 댓글도 있었다. “마라톤을 선택한다면, 다시는 마라톤을 할 수 없을 겁니다.” 수많은 경험에서 나온 듯한, 묵직한 현실 고증을 담은 수작이 나오자 여지없이 모두가 공감했다. 말하는 이의 농담과 진담이 반반 섞였으리라. 달리는 것에 얼마나 열정적이면 이런 고민까지 하게 되나 싶었다.

우리에게 어떤 열망과 열정이 찾아오게 되면 가끔 현실의 판단력이 흐려질 때가 있다. 궤도를 잡고 순항하던 축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그 오차가 점점 커지면 중요 관심사가 쉽게 뒤바뀌어 버리기도 한다. 관심사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무엇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지 객관적인 판단을 잃어버리게 된다. 열망이란 것은 다 다른 얼굴을 하고 찾아. 누군가에겐 지독한 사랑으로, 누군가에겐 일을 놓을 수 없음으로. 내겐 운동에 대한 열망이 찾아왔다. 작년 9월부터 시작한 탁구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4시간 넘게 운동하고, 그것도 모자라 보강운동도 별개로 했다. 잘하기 위해, 빨리 늘기 위해 시키지도 않은 줄넘기를 하루 2000개씩 할 정도로 열정을 불태웠다. 배우는 것들과 경험하는 것들을 긁어모아 탁구 에세이까지 써 내려갔다. 얼마나 좋아하고 빠져있었는지 발을 빼 보니까, 멀리 나와 3자의 시선으로 보니 알게 되었다. 현실은 꽤나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열망으로 가득할 때는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정신을 차려보니 눈앞에 바짝 다가와 있었다. 다가오다 못해 이미 중요한 시기와 타이밍을 놓친 것들도 있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지나간 것은 다시 돌이킬 수 없었다. 비슷한 상황을 몇 번이나 겪어도 왜 나는 깨닫지 못하는가 느꼈다. 뭘 그리 열정적이었는지 후회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저만치나 제쳐두고서.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모두 팽개쳐 놓고서. 놓치고 잃으면서 매번 다짐한다. 열정은 좋으나 밸런스를 맞출 것을. 현실과 이상 그 사이에서 간극 조절에 신경 쓸 것을. 허나 매번 지나가고 깨닫는다. 미련하기 짝이 없다. 어렵다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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