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생각] 9. 시절인연

by 분더카머


오늘의 문장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기 어려운 이유는, 이 (양심의 소리를 듣는) 기술이 현대인에게는 거의 없는 또 하나의 능력, 즉 자기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제 당신의 손을 놓겠습니다』, 기시미 이치로


고립이라는 것은 스스로 동굴에 들어가는 행위이다. 세상과 연결되는 선을 내려놓으면 놓을수록 몰입에 가까워진다. 혼자 있는다는 것은 자의적인 고립인데, 의도적으로 외부와의 접촉을 끊으며 집중이 필요할 때 나는 고립이라는 방법을 쓴다. 이 방법이 아직 온전치 않아 고립 속에서 현실 기억들이 집중을 방해할 때가 다분하다. 정신이 어지러울 때면 가부좌를 틀고 참선하는 승려를 떠올리고, 적막한 이국의 사원 한가운데서 명상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곳은 그곳과 다름없다 여기면서.

‘시절인연’이라는 불교 말을 좋아한다. ’모든 사물의 현상은 시기가 되어야 일어난다는‘ 뜻으로 만물의 모든 것은 자연의 섭리에 따르고, 시작과 끝도 따르게 되어 있으니 흐름을 바꾸려고 해도 무용하고 다가오는 것을 거부하려해도 할 수 없음을 나타낸다. 모든 것이 인과 연이 합해져 생겨나고, 인과 연이 흩어지면 사라진다. 인연이 맞을 때는 거부해도 맺어지게 되며, 인과 연이 맞지 않을 때는 아무리 노력해도 맺을 수 없게 된다. 존재가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현상에 인과 연이 곁든다. 받아들이는가,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요 근래 몇 년은 스스로 파고들어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외부와의 접촉을 전보다 줄이고, 고립으로 몰입을 이끌어내고,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는 작업들을 해야 할 때임을 직감한다. 잊을 수 없게 그 사실을 바라보려고 한다.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자유로움은 삶의 근간을 관통하고, 마음의 소리를 듣고자 함은 내 삶의 모토이다. 솔직하고 담백하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것, 필요치 않은 것을 원하지 않고 해야 할 것들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 아마 나는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을 기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자유롭게 날아가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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