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단편소설 중에서도 「키노」의 바 주인장 키노는 고통에 무디게 반응한다. 마치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그걸로 인해 ‘독’은 향할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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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고통을 인정한 다음에도 곧바로 서둘러 해결책을 구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하루키식 고통 대처 방식이다. 어떤 문제라도 간단한 해답은 없다. 중요한 것은 옳은 답을 내는 것보다 깊은 생각과 고민을 통해 이 세상과 나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것이다. 세상의 복잡함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있는 시간은 인생에서 필요하다. 혼자 조용히 품어내는 힘이 없으면 ‘마음의 연륜’ 같은 것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한다. 그 힘겨움을 혼자 조용히 품다 보면 자연스레 뭔가가 보인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임경선
국내 작가들 중 하루키 소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분들이 꽤 있다는 이야기를 한 팟캐스트를 통해 들었다. 신간이 나올 때면 국내 다수 출판사로부터 여러 제의를 받고 계약을 하는데 그 계약금이 문단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액수라는 이야기와 함께. 하루키의 신간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언제나 신드롬을 불러일으킨다. 판매부수를 보장할 수 있는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임을 부정하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루키를 좋아하지 않는 작가들은 대체로 작품에 퍼진 고루한 서사와 전개방식에 대해 좋은 점수를 주지 않는 편이다. 신간이라고는 하나, 읽어 보다 보면 결국 비슷한 구성의 이야기 흐름에, 인물 중 누군가가 사라지는 모티프를 사용한다는 것. 여성에 대한 대상화와 성교에 대한 서술 방식과 빈도 등 작품에 대한 비평 역시 적지 않은 편이다. 등단 이후 하루키는 일본 문단 내에서 그리 달가운 대접을 받지는 못 했다. 어떤 작가나 그렇듯 논란과 구설도 휘말렸으나, 때로는 과하다 싶을 정도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왕관을 쓰려면 그 무게를 버텨야 하지만, 그가 쌓아온 업적만큼 왕관은 특히 무거워 보인다.
비평이 있다면 반대급부도 있을 터. 평이한 문체로 감각적이면서도 철학적인 내용으로 깊은 여운을 준다는 점. 현실 세계에서 비 현실의 또 다른 세계로의 이동이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다는 점. 이 자연스러움에는 ’심리스‘(seamless, 이음새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다는 표현을 썼다. 옷감과 옷감을 연결할 때 손에 걸리는 느낌이 없을 정도의 촉각이 ’심리스‘가 아닐까. 비단 같이 부드러운 서사의 힘으로 해석해 본다. 일본의 한 작가는 “은유 능력을 서로 다른 두 이미지 사이의 점프력이라고 생각할 때 하루키만큼 멀리까지 점프할 수 있는 일본 작가는 없다”며 은유의 정교함을 극찬하기도 한다. 바로 상상이 되고 이해가 되는 멋진 표현이다.
어떤 작가나 일장일단이 있을 것인데 그가 자주 구성하는 특유의 그 모티프를 반길 정도로 나는 좋아하는 축에 속한다. 어두운 상황들도, 또 다른 세계도 그가 구성하면 무언가 다르게 느껴진다. 그렇게나 읽는 이를 이쪽저쪽으로 쉽고 자유롭게 끌고 다닐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작가를 아직 접해보지 못했다. 일련의 사건이나 일들이 벌어지고 난 뒤 캐릭터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하루키 소설 세계의 백미는 아닐는지. 적극적으로 해결하기에 앞서 내적인 숙고와 이해를 찾아가는 방식. 나와 세상에 대한 이해로 자연스레 확대되는 서사. 세상의 복잡함 속에서 ‘조용히 약동하는’ 캐릭터에 자주 감정을 이입한다. 별 것 아닌 일에서 펼쳐지는 독특한 전개 방식은 그만이 내놓을 수 있는 유머가 아닐까. 하루키가 길을 찾아가는 여정은 진지하면서도 알 수 없는 감명을 주기도 한다.
소설이라는 장르를 떠나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담백한 산문을 펼쳐내는 한 노인이 나타난다. 소설뿐만 아니라 생활에 있어서도 꾸준한 그의 태도를 발견한다. 작가란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을 하게 해 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루틴 있는 삶을 찾아가는 나의 배경에 하루키의 영향이 적지 않다. 쓰다 보니 하루키의 예찬이 되어 버렸다. 우리가 살면서 한 번은 통과해봐야 하는 세계를 매력적으로 만들어내는 작가니 언제든 그의 세계로 들어가 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