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생각] 55. 지리멸렬과 구원

by 분더카머


오늘의 문장

그래서 이 눈먼 사람들, 추상성에 삶을 바친 사람들은 제 힘닿는 데까지 현실을 솥에 넣고 휘저어 정수를 뽑아내고 자신이 준비한 퍼즐 판에 여기저기 붙여본다. 가끔은 그 쓸모없어 보이는 일이 누군가를 구원하는데 나도 그렇게 삶을 버텨냈다.

『책의 말들』, 김겨울


신형철 평론가 시화 책 『인생의 역사』에서 최승자 시인의 시를 다루는 것을 읽었다. 여성작가로서의 그녀가 겪어온 고난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꺾이지 않는 정신과 의지에 감탄했다. 내가 알던 것은 단편적인 배경과 시일뿐, 감히 그것들을 가지고 그에 대해 안다고 말할 수 없으리라. 최승자 시인에 대해 더 알아가야 한다고 느낀다.


시인은 내게 기묘함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뼈밖에 없는 몸에 담배를 물고 있는 대표적 사진은 이미지에 불과하더라도 더 이상 나아갈 데 없는 극단의 지경까지 자신을 몰아붙이는 모습이 엿 보인다고 할까. 하고 싶은 말들도, 살아온 삶들도 이제 더할 나위가 없는 건가 싶은. 괜한 마음에서 우려가 된다.


저마다의 생이 모두 다르겠으나 지리멸렬한 삶을 매일 마주해야 하는 건 우리라고 또 다를 게 있겠는가. 그 삶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할 때 아이러니하게 주옥같은 작품이 탄생한다. 누군가가 쓸모없어 보인다고 손가락질하는 것에 누군가는 목숨을 건다. 자신을 쏟아부어 누군가를 구원해 주는 것들은 만드는 게 예술이 아닐까. 글을 읽고 책을 볼 때 구원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자주 느낀다. 어디 글 뿐이겠냐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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