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자기 앞의 생을 받아들인다는 것, 허용한다는 것, 그것은 다른 말로 하자면, 구하지 못하는 것을 더 이상 바라지 않게 되었다는 말에 다름 아니겠지. 더 나아가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외부의 상황이나 평가와는 무관하게 자기가 해나가려는 것을, 조급해하지도 초조해하지도 않으면서, 자기만의 속도로 하루하루 꾸준히 해나가겠다는 말이겠지. 단순하고 명료한 삶으로 나아간다는 것.
『새벽과 음악』, 이제니
‘더트백dirtbag‘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보는 이도 있을 듯하다. 한국일보 최윤필 기자가 쓴 <가만한 당신>에서 처음 이 단어를 마주하게 되었다. 사전적 의미의 더트백은 쓰레기수거인, 환경 미화원을, 불결하고 언행이 막된 사람을 일컫기도 한다. 서양 등반계에서 통용되는 더트백은 오로지 등반에만 전념하는 ’산에 미친 자‘를 의미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더트백 : 프레드 베키의 전설>의 전설적인 등반가 프레드 베키는 94세로 별세할 때까지 가족, 친구, 직업도 없이 오로지 등반만을 위한 삶을 살았다. 10대부터 이어진 등반 경험을 책으로 남기면서 많은 산악인에게 영감을 남겼다. 돈벌이에 관심 없고 규범과 관습에 구애받지 않아 히피와 흡사해 보이지만 구체적 목표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그들과는 다르다. 세상사에 허물없이 낙천적인 모습으로 지내다가 한 가지 목표를 설정하면 엄청난 집중력을 보여준다.
아무렇게나 입고 잘 씻지도 않은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불결해 보일 수도 있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 보는 사람들은 더트백이란 단어를 낮잡아 부르는 데 썼을 것이다. 더트백은 늘 그렇듯 타인의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으며 살아가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니기에.
단어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단어의 의미와 가까운 삶을 지향하는 것. ‘더트백’이라는 단어는 내게 특별하게 다가왔다. 오직 한 가지 목표에 집중하고 외부 상황과 평가에 아랑곳하지 않는 더트백의 태도는 내가 꿈꾸는 삶의 모습과 맞닿아 있었다. 허울 가득한 이 세상에서 많은 것을 욕심내지 않고, 필요하지 않은 것을 바라지 않고 살아가려는 마음을 조금씩 키우면서. 나만의 페이스대로, 리듬을 지켜가며 앞으로 나아가면서. 우리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목표가 있다면, 그것에 집중해 살아갈 수 있다면. 스스로 자기 생의 더트백이 되어 주어진 삶을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나는 오래전 그 마음을 담았고, 서서히 그 마음을 키워나가고 있다. 언젠가 더트백이라 불릴 날을 기약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