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생각] 58. 식물의 윤회, 따뜻한 온기

by 분더카머


오늘의 문장

생사의 경계, 윤회의 무참함을 봤다고 해서 그렇게 집착할 필요는 없다. 죽음의 순간은 찰나다. 죽은 후에도 이처럼 온기를 품을 수 있다면 그걸로 괜찮다. 이 현장을 못 보고 지나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이 온기를 남은 생의 선물이라 믿으며 살아가야겠다고 결심하자 눈이 촉촉해졌다. 나무란 이처럼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다.

『나무』, 고다 아야


훗카이도 자연림에서 가문비나무는 쓰러져 죽은 나무 위로 새로운 나무가 자란다. 자생하기 위해 씨를 열심히 뿌려도 추운 지방인 훗카이도에서 생존하기란 쉽지 않다. 죽은 나무 위에 안착한 씨앗들에서 새나무가 살아남아 가문비나무로 다시 태어난다.


나무를 보면 비록 죽은 나무이지만 새 나무를 품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반대로 새나무가 오래도록 자라면 배 속에 죽은 나무를 보호하는 형태를 띄기도 한단다. 생사의 경계를 넘어 다음 세대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서로 엉켜 붙어 살아남기도 한다. 엄마가 아이를 품 듯이.


새 나무가 어느 정도 자라면, 죽은 나무의 흔적은 없어진다. 식물의 세계에서 짧게 느껴지는 몇 십 년 동안 아래에서 지탱해 주다 비로소 옛 나무와 새 나무 사이의 세대교체가 되는 이 순간을 작가는 식물의 윤회라 부른다. '이 정도면 되었다' 하고 자리를 내어주는 판단은 어떤 근거에서 오는걸까.


오래도록 품고 있는 내 바람은, 주변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따뜻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막상 다짐은 크게 하고서 해줄 수 있는 게 없음을 고심했다. 고민할수록 바라던 순간은 더 멀어졌다. 시간 지나 생각하니, 너무 거창한 것들을 떠올리지 않았나 싶다. 따뜻한 말을 건네고, 귀를 자주 빌려주고, 걱정을 나누어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해줄 수 있는 게 아닐까. 이제야 생각을 고쳐 먹는다. 사람과 살아가야 하는데, 나는 왜 이리도 서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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