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메인 장비 탁구채의 차례. ‘레슨을 받고 오랫동안 탁구 칠 겁니다’ 소상한 내 의지를 드러냈더니 직원은 중급 이상의 채로 티모볼, 비스카리아, 판젠동 3개의 채를 꺼내왔다. 레전드 독일 선수의 채인 티모볼의 경우 많은 생체인들이 입문할 때 선택하는 라켓이며, 육각형이 고른 교과서 같은 성능을 보여준다고 한다. 비스카리아는 중국의 장지커가 그랜드슬램을 달성함으로 인기 라켓이 된 모델로 임종훈 선수가 이 라켓을 사용하고 있다. 여러 커뮤니티 생체인들의 후기를 검색해 보니 볼끝이 날카로운 특징이 있다고 한다. 본인 채가 아닌 다른 채로 이런 감각 자체를 느낄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 ’이전에 A를 쓰다 B로 바꿨는데 확실히 타구 느낌이 다르다‘는 글들을 보며 언제쯤 저런 감을 느낄 수 있는지 궁금했다. 걸음마 수준의 내겐 다른 세계의 말들로 들리는 이야기들. 무림 고수들은 대화의 차원도 높아 보였다. 비스카리아를 쓰다 본인의 채가 나온 판젠동 라켓. 버터플라이사와 제작 단계에서 공격성보다는 안정감에 중점을 둔 라켓으로 요청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판젠동의 플레이를 보면 신출귀몰한 카운터와 컨트롤이 더 돋보였다. 실제 동호인 분들도 컨트롤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있는 것 같았다.
이 3가지 라켓을 다 잡아봤는데 그립 모양 빼고 도저히 차이를 모르겠다는 게 문제. 판젠동 선수처럼 무결점의 플레이를 하고 싶다는 거창한 목표 아래 판젠동 alc 라켓으로 선택했다. 라켓을 선택했다면 무게를 또 정해야 한다. 같은 라켓이라도 무게는 천차만별. 여성들이 들기 편한 80g 초반대 가벼운 무게부터 건장한 체격의 남성은 80g 후반대 정도까지도 든다. 가벼우면 다루기가 수월할 테고 무거우면 공이 더 묵직하게 나가리라. 대뜸 키를 물어보시더니 나의 경우 87~88g 그램 무게를 추천해 주었다. 이전에 쓰던 라켓에서 새 라켓으로 바꿀 경우 이 무게에 맞춰달라는 오더를 꼭 한단다. 그 미묘한 무게 차이까지 맞추는 걸 보면 우리 손의 감각은 얼핏 무뎌 보이지만 얼마나 섬세한지 깨닫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특별히 물결무늬 라켓으로 골라준다고 하시더니 나중 되면 이 물결무늬의 의미를 알 것이라는 오묘한 숙제를 내주기도 했다.
라켓 무게를 정했으니 이제 양면에 러버를 붙일 차례. 라켓 종류도 많았지만 러버의 종류는 더 많다. 많은 탁구 브랜드에서 각자들의 러버를 만들어 시중에 내놓는다. 플레이 스타일에 입각해 장착하지만 이 역시 개인의 취향이 아닐까 싶었다. 현 선수들의 러버 부착에서 힌트를 얻기도 하고, 지인분 러버를 빌려 써 보기도 하며 여러 루트를 통해 선택하는 것 같았다. 이 단계까지 오니 머리가 아플 지경. 러버 쪽은 정말 문외한이라 실력자 B분께 다시 헬프를 요청했다. 꽤 시간이 흐른 뒤 전달된 그의 추천에 맞춰 전면 흑색 닛타쿠 파스탁 G1, 후면 적색 엑시옴 오메가4 프로로 러버 부착을 마쳤다. 직원분도 추천에 ’초보가 시작하기에 좋은 러버에요. 좀 치시는 분이신가 봐요‘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러버를 전용 풀로 꼼꼼히 부착하고 라켓에 맞춰 고무를 동그랗게 잘라주는 것으로 마무리. 부착 후 테스트를 해보시더니 뒷면의 반발력이 앞면보다 강한 것 같다고. ’그게 또 차이가 있나요…?‘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지인들에게 레슨 받으며 탁구 친다고 말했더니, 갑자기 웬 탁구냐며 질문이 돌아왔다. ’그러게...탁구라켓까지 사버렸네?’로 카운터를 보내줘야겠다.
양손 가득 무겁게 장비들을 챙겨 첫 레슨을 받으러 가는 길, 이 얼마 만에 느껴보는 긴장감과 설렘인가. 가슴이 콩닥거리다 못해 몸이 막 달아올랐다. 가장 긴 구간을 달린다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출발 전 기차처럼 이제 막 엔진 예열을 마쳤는데, 그 선로를 달릴 몸은 얼마나 따라줄런지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