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I want is...
오늘. 잠깐. 시간 되세요?
| All I want is… |
오랜만에 오후 스케줄이 느슨한 날을 즐기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별일 없으시죠 코치님? 오늘 시간 되시면 잠시 시간 좀 내주세요! 화상으로요. 제 얘기 좀 들어주세요!”
라고 문자 메시지가 핸드폰에 떴다.
‘엇? 이 강압적 시간을 요청하는 자, 누구냐! 나한테 시간 맡겨 놓은 거냐?’
혼자 속으로 헛기침을 하며
‘이놈의 인기를 어쩌냐’
괜스레 거드름을 피우는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반면에 예의를 갖추는 모양새도 없이 하는 요청에 덜컥 걱정되는 마음도 앞섰다. 계약기간이 끝난 멤버에게 가끔씩 안부 인사나 문자를 주고받기도 하지만 이 정도의 긴박감은 없었다. 화상을 당일 일정으로 요청받는 상황은 매우 이례적이다.
퇴근시간 즈음에 화상으로 만나기로 하고 시간을 정해 초청 이메일을 발송했다. 오늘 퇴근 전까지 마무리하고 싶던 일이 있었지만, 일단 멈췄다. 꼭 해야 하고 결과물도 좋아야 하며, 다음 단계 진행을 위해서 오늘까지 완성해야 하는 분량이 있었다. 부담감에 온몸에 힘이 바짝 들어가고, 긴장감에 뒷목의 뻣뻣함을 느끼며 내가 나를 이겨내는 중이었다.
‘어쩔 수 없지. 멤버가 대화하자고 하잖아.’
라며 오늘의 숙제를 미룰 수 있는 아주 좋은 명분을 주는 상황에 멤버를 만날 반가움과 걱정이 섞여 마음이 들썩이는 오후였다.
흔쾌히 방 입장. 화상에 서로의 얼굴이 뜨자마자 괜히 깔깔거리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둘 다 오래간만에 반가우니 웃음이 먼저 나온 것이다. 물 한 모금을 들이켜고 목소리를 한 옥타브 높여 내가 먼저 인사를 전했다.
“어쩐 일이세요? 무슨 일 터지신 거죠? 뭐든 너무 반갑다. 매일매일 제 목소리가 음성 지원되실 텐데 오늘 저를 왜 불러 젖히신 겁니까!”
일부러 많은 질문을 던지며 짓궂은 너스레를 떨었다. 멤버도 조금의 쑥스러움 없이
“코치님 안녕하세요. 잘 못 지내고요. 음성지원은 돼요. 아직도 모니터에 코치님과 나눈 내용들 덕지덕지 붙어 있어요. 매일 읽고 그대로 하고 있어요. 그랬는데도 너무 힘들어서 SOS 쳤어요. 들어주세요.”
면서 내 목소리의 보다 더 높게 되받는다.
멤버가 겪고 있는 상황을 삼십여분이 넘게 조용히 다 들었다. 생각보다 어지럽고 심각한 내용이었다. 등장인물이 거짓말 조금 보태서 알파벳 숫자만큼 언급되었다. 긴 이야기를 줄여 정리하자면, 바로 위 상사의 공평하지 못한 팀 관리와 왜곡된 이야기가 더 윗선까지 전달되면서 멤버는 제한된 소통, 오해, 누명, 왕따 등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처해 있었다. 불가 반년 전만 해도 성과와 리더십에 칭찬을 받고 더 넓게 높게 성장할 수 있도록 서포트를 받고 있었다. 주니어급과 중간 관리자급 팀원들과 쉽지 않은 소통도 잘 아울렀고, 본인 스스로 개발과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열심히 쫓아다니면서 먼저 나아지려고 노력했다. 주말에는 자연과 더불어 식물들을 재배하고, 단거리 마라톤까지 뛰며 체력과 정신 건강도 관리했다. 속이 멍이 들고 마음과 정신이 피폐해질 만큼 힘든 일을 전 직장에서 겪었고, 잘 극복하기도 했다. 이 정도 맷집이 있는 멤버인데도 어지간히도 답답하고 버거워서 연락을 한 거였다.
감정에 더 매달려 밤새 얘기해도 모자랄 상황이었다. 몇 날을 새서 다 들어주고 답을 찾을 수 있다면 들어주겠지만 그럴 리 만무하다. 멤버가 오늘 절실하게 필요한 것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말을 끊을 시점이 되었다. 부드럽게 빙빙 돌려서 조금은 상냥하게 방법으로 할 것인가 짧고 굷게 임팩트 있는 질문을 할 것이냐는 단 몇 초만 고민했다. 단순 명료하게. 마음의 온기를 담아서 단호하게 물었다. 그리고 목소리를 굵게 낮추었다.
“저에게 원하는 거 말씀하세요. 매니저님.”
질주하다가 갑자기 고삐가 당겨진 경주마처럼 멤버는 말을 멈췄다. 내가 왜 말을 끊는지 그 멤버는 잘 알 것이다. 본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듯 몰랐고, 벌어진 상황은 맞지도 않고 옳지도 않았는데 본인이 틀린 것으로 되어 있었다. 감정은 설명 안 해도 엉망진창 혼동의 동굴 안이였다. 여하튼 멤버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몇 초간의 침묵을 유지해 주었다. 상냥하고 조용한 목소리 톤으로 선택할 수 있는 질문을 했다.
”매니저님, 문제 해결 답을 원하세요? 아님 저에게 특별히 원하는 무언가가 있는 걸까요?”
내가 크게 웃음을 지었다. 그녀도 따라 웃음을 지었다. 선택할 수 있도록 한 이 질문은 심정이 복잡한 본인을 배려한 방법이라는 것을 멤버는 잘 안다. 스스로가 성찰하고 인지해서, 알고 있지만 외면한 본인의 답을 입 밖으로 뱉어야 한다는 것을 이미 여러 차례 겪어서 알기 때문이다. 다양한 관점의 질문을 통해 본인이 기어이 말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택할 수 있는 ‘친절한’ 나의 질문형태에 내가 웃는 거였고, 멤버도 그에 대해 웃음 화답을 한 것이다.
“둘 다 주세요!”
라는 대답이 들렸다.
‘아….. 정말…. 내 맘 오늘 몰캉한 거 어떻게 알았지?’
멤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이미 물랑 해져 있긴 했다. 나도 멤버가 스스로 알고 있는 것을 속 시원하게 말해주고 내가 공유할 수 있는 짧은 이야기를 얘기해 주면 대화 진행이 훨씬 더 쉬울 거였다. 잠시 쉬운 길을 선택하는 달콤함에 넘어갈 뻔했다. 정신을 다시 붙잡았다.
바로 답을 줄 수는 없었다.
‘나 코치잖아!!’
목소리와 정신을 가다듬고 내가 다시 물었다.
“오케이, 그럼 하나씩 다시 해볼까요? 저한테 원하는 것 먼저요. 무엇이 필요해서 저랑 이 수고스러운 대화를 하는 걸까요?”
멤버가 말했다.
“코치님, 코치님이 저랑 반년이 넘게 세션 진행하셨잖아요. 그래서 저를 잘 아시잖아요. 제가 어떤 사람이에요? 나쁜가요? 모자라나요? 무능한가요?”
질문에 답을 하지 않고 질문을 다시 했다
“자, 하나 더 물어볼게요. 매니저님이 이런 질문을 하시는 이유를 말해 주세요. 이유가 있잖아요. 무엇 때문에 제 답이 필요한 거예요!”
멤버에게 대답을 강하게 요구했다. 멤버가 정확하게 본인이 원하는 것을 말해야 한다. 그래야 나도 멤버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말해 줄 거니까. 멤버에게 항상 공짜는 없다고 언급해 왔으니 내가 무리하게 답을 드리블하는 것이 아닌 것을 잘 알터이다.
“코치님. 코치님의 응원이 필요해요. 제가 잘하고 있다고….”
나는 잠시 아무 말을 하지 않고, 몸을 카메라 앞으로 가깝게 다가갔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환하게 웃는 웃음을 지었다. 얼굴도 발갛게 상기되어 붉어져 있었다. 살짝 목메는 건 뭐지?
멤버는 그냥 응원이 필요한 거였다.
조용히 목을 가다듬고 나지막이 말했다.
“매니저님, 매니저님 안이상해요. 팀원들 잘 안고 이끌고 가려고 노력하는 리드이고요. 성질 좀 있지만 누군가에게 성질내는 게 아니고 본인을 볶는 사람이고요. 안 되는 것도 가급적 되게 하려고 하는 사람으로 저는 알고 있어요. 만약, 제가 하는 말이 틀리다면 매니저님이 연기를 매우 잘하는 사람일 거고요.”
카메라 앞으로 밀어 넣었던 몸을 빼서 의자 등에 내 등을 밀착하고 자세와 호흡을 가다듬었다.
멤버도 조용히 내 말을 듣고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이어서 다음 질문을 했다.
“답, 해결책 달라고 하셨죠? 제 질문에 답해 보시겠어요? 최악의 경우 밥을 굷게 될까요? 입을 옷이 없어질까요? 사는 집을 잃게 될까요?”
라고 의도적으로 극한 상황으로 물었다. 답은 당연히 그럴 리 없는 것을 우리 둘 다 안다. 그다음 질문을 하기도 전에 나의 말을 끊고 본인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잃을 게 없어요. 윗분들이 말하고 제 탓을 하고 소통을 차단 행동을 제가 어찔할 수 없기도 하고요. 제가 어찌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또 그거에 매달려서 제 방어하는 것에 빠져 있었네요. 그냥 그러십니까.. 정도로 대응하고. 제 할 일 할래요. 그분들은 저보다 더 빠르게 다른 곳으로 가시거나 사라지시더라고요. 그 자리를 지키려고 희생양이 한해에 꼭 하나는 선택되는데 올해는 저네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할게요. 알면서 또 까먹었어요. 저나 잘할래요. 나나 잘하자!”
멤버가 한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뱉더니 웃었다. 꾸벅 고개 인사를 했다.
“후련해요. 듣고 싶은 말 다 들었어요. 고맙습니다!”
저의 응원이 듣고 싶으셨다니... 저도 고맙습니다!
*** 아주 잠깐 진심을 나누는 시간이면 충분하다. 내가 당신을 위해, 그리고 내가 나를 위해. 꼭 그렇게 하자.
하루에 하나… ‘낀 자’들과 함께 나눈 이야기들을 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오경욱 코치입니다.
학교 교육을 마치면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돈벌이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돈벌이의 중심, 바로 ‘회사’라는 조직 속으로 들어가게 되지요.
‘낀 자’는 회사라는 조직 안의 모든 구성원을 말합니다. 우리는 늘 조직의 구조 안에 끼어 있고, 시시때때로 발생하는 문제와 문제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끼어 있을지언정, 나의 선택으로 인해 끼어 있거나 혹은 조금 더 나은 나만의 방식으로 끼이지 않고 헤쳐 나오고 싶었습니다.
그 절박함 속에서 방법을 배웠고, 마침내 조금 편히 숨을 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배움을 통해 편히 숨을 쉴 수 있었으니, 끼어 있는 누군가에게 그 방법의 작은 조각을 전하고자 합니다. 하룻밤 사이에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도록 응원을 보탭니다.
그 응원이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일 수 있도록, 한 편 한 편 정성껏 쓰고 그렸습니다.
본인을 위해, 그리고 응원이 필요한 ‘낀 자’에게 미소와 함께 전해 주세요.
한 장의 작은 응원과 함께 웃으면서 해 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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