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일 : 싫은 티 안내기
싫어하는 사람에게 잘해주는 나를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습득한 스킬 중 하나는 감정을 어느 정도 숨길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억울하거나, 화가 나는 상황에서는 욱하는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해 여전히 애를 먹고 있지만, 그나마 내가 잘 숨기는 감정은 싫어하는 사람에게 싫은 티 내지 않기다.
일을 하다 보면 성향이 맞지 않는 사람도 있고, 은연중에 하대를 하는 경우, 안하무인격으로 동료를 무시하는 사람이 있다. 어딜 가나 이런 또라이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일명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어떤 집단이나 또라이는 존재하는데, 만약 당신이 속한 집단에 또라이가 없다고 생각된다면 당신이 또라이일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법칙!
이런 법칙이 나오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인간의 성향은 너무나도 다양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합을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에게 잘 맞는 사람이 타인에게는 어렵거나 기피하고 싶은 상대가 될 수도 있다. 반대로 너무 괜찮은 사람이라고 소개를 받았는데, 말투나 식성, 패션 등 나와는 맞지 않는 취향 때문에 가까워지기 힘들 수도 있다.
최근에도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고, 좋은 사람이라고 소개받은 사람과 일을 하다가 나 홀로 기분이 상한 적이 있다. 그 사람은 나에게 상처를 줄 의도가 없었으리라 믿지만, 나를 향해 필터링 없이 내뱉은 말들 때문에 본인은 굉장한 상처를 받았다. 그리고 몇 번의 상처를 입은 후 그 사람을 내 바운더리 내에서 조용히 내보내게 되었다. 하지만 계속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기에 나는 티를 내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아무도 내가 그 사람을 싫어하는지 모른다. 친한 후배에게 슬쩍 '저 사람 나랑 안 맞아'라고 말했더니, 전혀 티가 안 났다며 어떻게 태연하게 일을 하냐고 되물었다. 계속 일을 해야 하는 사이에 얼굴 붉혀 뭐하나 싶고, 티 낸다고 달라지는 거 없으니 깔끔하게 일할 때만 잘 지내다가 사적으로는 얽히지 않으면 된다고 답했다.
어쩌면 타인에게 미움받기 싫어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성격에서 출발한 기술일 수도 있다. 나의 경우 타인에게 미움받을까 두려워하는 편인데, 역으로 생각해보면 상대라고 나에게 미움받고 싶겠는가. 괜히 싫어하는 티 내서 그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싫다고 생각하는 그 감정은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 간직해도 충분하다. 내 감정을 티내지 않은 상태에서 그 사람과 무언가를 해야 하는 상황에 닥쳤을 때 자연스럽게 피하거나 핑계를 대고 사라질 수는 있지만, 내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그 상황에서의 내 행동을 불편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냥 그러려니 하겠지.
그런데 이 글을 한참 쓰다가 생각난 사실은 아주 예민하고 눈치가 빠른 사람은 내가 티를 내지 않는다고 해도 은연중에 눈치채지 않았을까 싶다. 앞으로는 감정을 더 꽁꽁 숨겨야겠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나쁜 기술만 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