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일 : 만우절은 없었다

만우절 장난 문자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by 몽상가 J

4월 1일 만우절. 나이를 먹어도 만우절은 그저 신이 난다. 아침부터 장난치는 친구들의 문자를 보고 알면서도 당해 본다. 하지만 나에게 만우절은 거짓말을 하는 공식적인 하루가 아닌 친언니의 생일이다.


언니의 양력 생일인 4월 1일. 언니는 어릴 적부터 만우절이 생일이라는 이유로 알게 모르게 피해를 입었다. 이제는 나이가 있어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거의 없지만, 어릴 때는 언니가 친구들에게 오늘이 생일이라고 하면 거짓말이라며 믿지 않았다. 우리가 어릴 때는 생일날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노는 문화가 있었는데, 주인공은 자신이 친하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에게 초대장을 주고 엄마는 친구들을 위해 상이 휘어지도록 음식을 준비한다. 친구들은 소소하게 생일 선물을 하나씩 준비해서 주인공의 집으로 몰려온다. 그런데 언니는 새 학기가 시작되고 약 한 달 만에 생일을 맞이하는 탓도 있겠지만, 만우절이 생일이라고 하면 거짓말인 줄 알고 오지 않는 친구들이 항상 있었다. 오랜 친구들이야 작년에도 생일을 함께 보냈으니 당연히 참석했지만, 새로 사귄 친구들은 진심으로 장난인 줄 알고 오지 않는 경우들이 있었다. 내 생일은 아니었지만 언니와 함께 살고 있는 1인으로 그 광경을 매년 목격했는데 어린 나이에 '내 생일은 만우절이 아니라서 다행이야'라고 철없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누구보다 어른스러웠던 언니는 자신을 믿고(?) 생일파티에 참석해 준 친구들과 즐겁게 놀았다.


나 역시 친구들에게 '오늘 우리 언니 생일이라서 일찍 집에 가야 돼~'라고 하면 거짓말을 한다고 놀려대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어린이 시절에도 쉽게 당하지 않았던 나는 '진짜 우리 언니 생일이거든!' 이라고 소리를 치며 집으로 향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내가 만우절에 태어났다면 엄마에게 엉엉 울면서 내 생일을 바꿔달라고 소리를 쳤을 게 분명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성질머리는 여전하다.


나이가 들면서 언니의 만우절 생일은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다. 어릴 때는 친구들에게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어른이 되니 만우절이 되면 모두가 기억하고 언니의 생일을 축하해 준다. 심지어 내 친구들까지 '오늘 OO언니 생일이네?'라고 물어온다. 그래, 유명한 날이 기념일인 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비록 공식적으로 거짓말이 난무하는 만우절이 생일이라는 게 께름칙하긴 하지만 마치 국가 공휴일처럼 그날이 되면 모두가 한 사람의 생일임을 기억해 준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가.


"언니는 좋겠다. 만우절에 태어나서 지인들이 언니 생일 까먹을 일은 없겠어!"

"너 어릴 때는 만우절에 태어났다고 놀리지 않았냐?"

"어릴 때는 그랬는데, 커보니 그게 더 좋은 거 같아."


엄마는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생일을 음력으로 따졌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식탁 위에 미역국이 올라오지 않았다. 워낙 어릴 때부터 나에게 만우절은 언니 생일이라는 인식이 강해서 당연히 미역국이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데, 엄마가 음력 생일을 따진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는다. 이미 출근을 한 언니에게 문자를 보내 어떤 선물을 받고 싶은지 물었다. 아직 답이 오지 않았지만 무슨 선물 타령이냐고, 됐다고 할 게 분명하다.


오늘은 만우절이자, 언니의 생일인 4월 1일이다. 지금까지 쓴 글은 전부 거짓이다, 라고 쓸 수 있는 내용을 쓰고 싶었지만, 지금까지 쓴 글은 너무나도 진짜다. 글에서는 거짓을 말하지 못했으니 지인들에게 재밌는 장난이나 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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