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일 : 결혼 결사반대

결혼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by 몽상가 J

함께 일하는 피디, 작가와 점심을 먹고 날이 좋아서 야외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진짜 봄이 온 것 같다며 광합성을 즐기던 중 누군가 무심코 연애를 하고 싶다고 했다. 손잡고 꽃놀이도 가고, 그냥 한적한 길을 함께 걸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아이스 초코를 마시며 거들었다.


"아, 결혼하고 싶다."


그 순간 임신을 한 피디가 나지막한 소리로 내 의지를 꺾어버렸다. "하지 마요. 제발."


나이가 있다 보니 주변에 결혼을 한 사람도 많고, 아이를 낳은 사람도 많다. 그런데 이미 유부 라이프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은 내가 결혼을 하고 싶다고 하면 하나같이 말리느라 정신이 없다. 자기들은 이미 해봤으니까 하지 말라고 하는 거지, 나도 사랑하는 사람이랑 알콩달콩 살고 싶은데 왜 못하게 말리는 건데!


기혼자들은 말한다. 결혼은 '나'라는 존재를 잃는 것과 같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이 100이라면 30도 할 수 없다고 한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연애할 때보다 결혼을 한 이후에 서로 말조심을 해야 좋은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서로에게는 각자의 상식이라는 세계가 존재하는데, 나는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그 집안사람들은 옳다고 믿고 일평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그 행동을 바꾸려 들면 이혼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신혼이라고 일컫는 1-2년 동안 각자의 세계를 이해시키느라 싸움을 많이 하는 거라고, 3년 차가 되면 대부분 서로를 포기하고 살기 때문에 싸우는 일도 줄어든다고 한다.


기혼자 피디는 나에게 물었다. "작가님, 결혼이 왜 하고 싶어요?"


내가 결혼을 하고 싶은 이유는 영원한 친구가 되어줄 사람이 필요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함께하고 싶고, 힘들 때는 내가 기댈 수 있는 안식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피디는 나의 이야기를 한참 듣더니 '결혼'이 아닌 '동거'를 추천했다. 지금 내가 결혼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동거를 통해서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것들이라며 '반 동거'를 추천했다. 그리고 연애를 실컷 하다가 40대 중반이나 후반쯤에도 굳이 결혼을 하고 싶다면 즐길 만큼 즐긴 뒤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미혼 피디가 말했다. "그 나이에 나랑 결혼해 준다는 사람이 있을까?"


기혼 피디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없어서 못하는 거면 안 하는 게 낫고, 누군가 만나고 있는데 '굳이' 하고 싶다면 하라는 거지, 그 나이에 무조건 결혼을 하라는 게 아니라며 웬만하면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덧붙여 자기가 하는 말 다 안 들어도 좋은데, 결혼하지 말라는 말은 제발, 꼭,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신신당부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지금의 남편과 오래도록 연애를 할 거라는 의미 없는 다짐과 함께.


미혼 작가가 말했다. "피디님, 뱃속의 아기가 다 들으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피디는 이미 회사에서 못 볼 꼴을 많이 봐서 태교는 진즉에 포기했다며 아이도 세상에 나오면 다 알게 될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가 결혼하지 않는다고 하면 적극 지지할 계획이라고도 했다.


나는 말했다. "결혼도 장점은 있을 거 아니에요. 장점 좀 말해봐요."


그녀는 굉장히 오랜 시간 생각했다. 제일 친한 친구가 생겼다는 게 장점인 것 같다며, 더 고민을 하더니 이게 끝이라고 했다. 우리는 설마 그거 하나뿐이겠냐고 하자, 미안하지만 정말 고민의 고민을 거듭했는데 장점은 이거 하나뿐이라고 했다.


30분에 걸쳐 나눈 이야기를 통해 나는 머릿속이 꽤 복잡해졌다. 정말 내가 생각하는 건 환상이고 로망일 뿐인가. 결혼은 곧 전쟁인 것인가. 알콩달콩은 개뿔이고, 매일 같이 싸우는 게 일상이 되는 건가. 어쩌면 나는 가족이 필요한 것 같은데, 동거를 하는 사람을 가족이라고 칭하기엔 부족함이 있을 것 같다. 누군가는 서류상으로 엮여야만 가족이냐고 하겠지만 약간의 법적 울타리를 채워놔야 가족이라는 틀 속에서 서로 책임감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다. 물론 나와 당신, 우리 둘만의 울타리가 아닌 서로의 가족이 엮인다는 중차대한 문제가 엮이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나에게는 그 울타리가 곧 안정을 뜻하는 것 같다.


모르겠다. 아직까지는 결혼을 할 상대를 만나지 못했지만,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나타나면 나는 오늘 들은 이야기를 모두 잊고 결혼을 선택하지 않을까? 그리고 살아보고 경험을 해본 뒤, 기혼들이 미혼들을 말리듯 나 역시 그들을 말리고 있을까? 아니면 적극 홍보를 하며 다닐까? 지금 결혼할 사람도 없으면서 고민을 할 필요는 없지만 가끔 이렇게 적극적으로 결혼보다는 동거를 추천하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흔들린다.


점심시간을 이용한 반짝 대화의 결말은 막내의 한 마디로 끝이 났다.


"우리 결혼 말고 재밌는 프로그램으로 대박 나서 다 같이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얼굴 내놓고 인터뷰해요. 결혼은 성공한 다음에 다시 생각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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