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일 : 능력있는 작가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전 회의를 하다가 지난주에 막을 내린 <펜트하우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아직 보지 않은 분들이 있을 수 있으니 자세한 내용을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시즌 2의 마지막 회를 보고 나는 '설마 이대로 끝이야? 말도 안 돼!'를 외치며 시즌 3는 보지 않겠다고 씩씩거렸다. 후배의 말에 의하면 시즌 1이 끝날 때도 시즌 2는 보지 않겠다고 하더니 본방 사수를 하는 나를 보고 어이가 없었단다. 정말 사람 하나 죽였다가 살리는 건 일도 아닌 작가님의 필력은 마치 '내 드라마에서 불가능은 없다'를 실천하고 계신 것 같아서 어이가 없지만, 더 어이가 없는 일은 그럼에도 내가 본방 사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펜트하우스>를 보는 사람들은 시즌 1이 시작됐을 때부터 만나면 무조건 드라마 이야기를 했다. 주단태가 어땠고, 천서진이 무슨 짓을 저질렀고, 오윤희가 어떤 복수를 했는지, 로건 리 그리고 심수련, 나애교의 비밀까지 파고 파고 또 파도 계속해서 놀라게 만드는 내용 때문에 후 토크는 끝이 없었다. 드라마를 보면 연출보다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되는데, 막장의 끝판왕이라는 말을 하면서도 보게 만드는 건 작가님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방송가 사람들은 프로그램을 만들 때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막장이라고 욕을 하면서도 챙겨보게 만드는 <펜트하우스>는 대단한 작품인 것 같다.
요즘 챙겨보는 드라마가 더 있다. <나빌레라>와 <빈센조>. <나빌레라>는 이미 웹툰으로 보고 너무 감동을 받아서 책까지 구입한 작품이다. 캐스팅이 쉽지 않을 텐데라는 걱정과는 달리 현재까지는 만족하면서 보고 있고, 이미 내용을 알고 있는 본인은 벌써부터 눈물이 날 것 같아서 큰일이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의 경우 원작을 해치는 경우가 많아서 잘 돼야 본전이라는 말들을 많이 하는데, 다른 사람의 평은 들어보지 않았지만 웹툰을 보지 않은 친구는 1,2회는 조금 지루했으나 3회를 본 뒤 앞서 지루했다는 평을 모두 지우겠다며 사과했다. 원작이 있기 때문에 스토리가 산으로 갈 염려는 되지 않으나, 실제로 할아버지가 발레를 하는 장면을 어떻게 구현하게 될지 그 부분이 가장 기대된다.
<빈센조>는 사실 작가님의 구성과 필력에서 끝난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물론 송중기라는 배우 섭외가 신의 한 수였지만 (나이가 들수록 더 멋있어지는 것 같음) 매회 놀라울 정도로 찰진 대사와 타 작품을 인용하는 설정 및 대사는 엄지를 치켜들게 만든다. 이 작가님의 이전 작품인 <열혈 사제>를 볼 때도 주연 못지않게 임팩트 있는 조연들을 짜임새 있게 배치시키는 구성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빈센조> 역시 빛이 나는 조연들의 활약으로 드라마가 더욱 재미있어졌다. 전여빈이라는 여주의 매력을 재발견하게 해준 것도 작가님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드라마를 볼 때마다 연출보다 작가를 확인하는 사람들이 많다. 유명한 작품을 쓴 작가의 작품이라면 일단 챙겨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 역시 작가 이름을 확인하고 챙겨보는 편이다. 내가 방송작가여서 그럴 수도 있지만 예능 프로그램도 내가 아는 작가님이 기획한 프로거나, 유명한 작가님이 기획한 프로라고 하면 일단 1회는 챙겨보려고 노력한다. 드라마도 마찬가지로 재미있게 봤던 작품을 쓴 작가님이 하는 드라마라면 일단 1회는 보는 게 의리랄까. 아무튼 나는 방송을 볼 때 연출보다 작가의 능력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특히 드라마의 경우 한 작품을 끝까지 보게 만드는 건 작가의 필력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구성이나 스토리에 따라 한 작품을 끝까지 달릴 것인지 말 것인지를 판단하는데, 간혹 잘 흘러가다가 스토리에서 길을 잃는 경우 꽤나 고민을 하지만 만약 중반부를 넘어섰다면 이것 또한 의리로 끝까지 보긴 한다. 모두가 욕을 해도 작가님은 알지 못하는 혼자만의 의리로 완주를 하는 것. 하지만 중반에 도달하기 전 길을 잃게 되면 과감하게 손절한다.
대중이 끝까지 지켜보게 만드는 필력을 지닌 작가님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어떤 생각으로 세계관을 만들고 구성을 하시는지, 그런 능력은 타고나는 건지 모르겠지만 (본인은 굉장히 노력해서 작가 인생을 살고 있는 편) 그 능력 나도 한 번 경험해 보고 싶다. 뛰어난 아이디어를 가진 예능 작가와 뛰어난 필력을 지닌 드라마 작가. 둘 중 하나라도 되어 보고 싶은 마음뿐이다.